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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종면에게

maengoo | 2009.03.27 | 조회 1444
닿을락말락 수줍은 봄의 쑥쓰러움 앞에 갑자기 북국의 겨울이 마음에 들어왔다. 휑한 바람 한 자락에 '쨍'하고 깨질 듯한 팽팽한 호수. 앙상한 전나무 가지. 내가 참 좋아하는 사람을 닮은 풍광. 혼자인 듯한 그 그림에서 연인을 찾았다. 그 사람은 호수 주위를 거닐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
  '혼자'에 관한 22년 전 독서 추억이 있다. 대학 1학년 시절 제목만 보고 무심코 잡은 에세이 한 권. '교수대로부터의 리포트'. 동유럽 어느 작가의 실화. 안네 프랑크의 일기와 조금 비슷한 얼개. 그의 막바지 운명은 그랬다. 나치 폭압 시절 누군가의 밀고에 의해 고문실로 간다. "난 뜻을 함께 하는 이들과 함께 있을 때 운동 경기 응원단처럼 신나고 용감했다. 하지만 혼자 남겨졌을 때 짐승의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음을 깨달았다."…지금은 나치 시절도, 노종면이 짐승의 모습으로 있는 때도 아니다. 그가 그렇게 하고 있지 않음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문득 시절의 엄중함을 말하고 싶어서다.

  난 노종면을 늘 "어이, 쫄면 성" 이렇게 불렀다. 싸가지 없는 후배다. 쫄면은 이렇게 부르면 그에 맞게 대응하는데, 조금만 높여 부르면 좀 잘난 척 하는 듯 싶어서 그렇게 부른다. 쫄면은 나와 함께 일할 때 참 잔소리를 많이 했다. 심지어 유치장에서 내 동기 장혁이가 몇 마디 했다고 대놓고 깨는 인간이다. 지나치다 싶을 만큼 원칙과 양심을 논하고 사람살이에, 또 일에 열중하니 부담스러웠다.  그래서 미워하고 싶은데 잘 안 되니 참 내가 못났다 싶다. 거꾸로, 겨울 풍경에 담긴 봄같은 사람이다. 닿을 듯 말 듯….
  형이랑 진탕 얘기하고 싸우던 3년 전 어느 날, 부평 그의 집에 가서 하룻 밤을 잤다. 깨어나니 쫄면은 여느 때처럼 일찍 출근해 뉴스 준비하자며 나를 재촉했다. 게으름뱅이에게 시원한 우유 한 잔을 권했다. 형수에게 뒤늦은 인사를 했다. 얘가 셋이더라. 그 중에 한 아이가 병 때문에 오늘 무서운 방에서 수술을 받았다. 낡은 아파트, 좁아터진 집 구석인데 알뜰하게 살아 온 흔적이 한 눈에 잡힌다.
  그런 사람을 '도망갈 수 있다, 증거를 없앨 수도 있다'라며 영어의 처지로 만들었다. 웃을 수도 울 수도 없으니 난감할 뿐. 어차피 그를 잡을 수순이라 이미 눈치했으니, 좀 미안하지만 별로 아프지 않다.
  반투명 유리를 통해 얼굴이라도 보게 찾아가고 싶지만, 도저히 못 하겠다. 쫄면 잔소리 들을까 싫기도 하고 바보가, 찌질이가 될까 봐 그렇다.
  월요일부터 부쩍 노조 사무실에, 옆 회의실에 사람이 넘친다. 체계가 없는 듯 하면서 실제로는 살아있는 유기체로 짜임새있게 잘 움직인다, 개미처럼…. 눈물 속에 웃음을 담은 선후배, 동기들이다. 쫄면이 잠시 빈 자리가 이렇게 북적인다. 쫄면이 없는 만큼 우리 모두가 더 가까와지니 참 유익하다. 난 또 별 기여 없이 이들에 기대어 떳떳하게 산다.
  난 쫄면을 기다리지 않는다. 어차피 돌아올 텐데 뭐하러….
  한 가정을 책임져야 할 나이를 훌쩍 넘긴 무책임함을 난 잘 피해 왔다. '남자 관계가 복잡해서'라고….
남자 관계 정리하려고 무던 애를 썼는데, 누군가가 그것을 방해하고 있다고 또 변명한다. 그래도 어쩌랴, 사랑하니….
  쫄면, 그리고 그의 많은 연인들과 함께 오래 즐겁게 갈 세월과 길을 생각하니 빙긋이 행복이 피어오른다.까칠하지만 원칙과 상식이 있어 아낄 수 밖에 없는 사람들과의 일상이 오늘도 계속된다.
  소박한 진실의 깃발은 오늘도 아름답게 나부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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