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내 메일센터에 올라와 있다는 법무팀장의 글 잘 읽었습니다.
해직되기 전 15년여를 현장에서 부대끼며 살아왔지만, 허울만 남은 ‘선후배’들이
감히 말도 못 꺼내는 해직자 문제를 공개적으로 제기했다는 점, 높이 평가합니다.
대법원 판결이 3년 넘게 나오지 않으면서,
‘해묵은 다툼을 끝내고 속으로 곪은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노사가 뜻을 모아
‘사태의 빠른 해결을 바란다’는 탄원서를 제출하자는 게 글을 올린 이유로 읽힙니다.
저는 그의 문제의식에 동감하나, 그의 제안에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법무팀장이 직제 상으로는 부국장급 간부 사원이지만,
지난 5년여의 사내 아픔과 갈등을 가슴으로 품지 못하는 한계를 보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대법원이 3년 넘게 확정 판결을 미루는 이유가 어디에 있다고 보십니까?
저는 일부러 판결을 내리지 않고 있다고 봅니다. 내리기 싫다는 의사표현으로 봐야 옳습니다.
판결을 미룸으로써 안게 되는 ‘법적 불안정 상태’보다
노사 어느 한편에 치우친 판결로 짊어져야 하는 법원의 정치, 사회, 법적인 부담감이,
더 크다고 판단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게 저의 주장의 근거입니다.
이 부담감 때문에 부당하기 이를 데 없다고 생각하는 2심 재판장조차도
‘6명 해직자의 재입사와 임금포기’를 판결에 앞서 화해조정 결정문으로써 권고했습니다.
당시 노조와 해직자들은 ‘해고 무효’와 ‘희망펀드 변제’라는 당위를 포기하면서까지
‘해직 사태 해결을 통한 회사 정상화’를 위해 조정 권고를 받아들였지만,
회사 측이 반대하면서 소송이 이어지고 있다는 점을 상기시켜 드립니다.
좀 더 과거를 반추해 볼까요?
2009년 3월말 구속영장이 기각돼 풀려난 저는
해직자들을 대표해 구본홍씨와 서울 강남의 일식집에서 만났습니다.
‘1심’이라는 표현을 쓰지 못하는 사측을 이해해 달라 했습니다.
1심 판결이전에라도 사태를 일괄 해결하자고자 하는 사측의 진정성을 믿어 달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성안되고 합의된 것이 ‘4.1 합의’입니다.
서울역 사옥과 부근을 눈물바다로 물들인 그 어려운 합의 이후 어찌됐나요?
구본홍 사퇴를 둘러싼 저간의 루머와 추론은 글로 옮기지 않겠습니다.
2009년 이후, YTN의 ‘옛’ 선배들 중에는 2명의 청와대 홍보수석이 배출됐고,
배석규 사장도 5년여 동안 YTN 사장의 지위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이 정도면 어지간히 한 것 아닌가요?
또 다른 홍보수석으로의 입성을 위해, 또 다른 사장으로의 출세를 위해
해직사태가 대물림되면서 이용돼야 하는 건가요?
그렇다면 지금 무엇이 필요한가요?
판결을 빨리 내려달라고 대법원에 노사의 탄원서를 올리는 게 순서일까요?
무슨 근거로 그런 탄원서가 ‘사태의 빠른 해결을 바라는’ 노사의 뜻을 모을 수 있는
도구가 된다는 건가요?
저는 탄원서가 중요한 게 아니라,
‘해직 사태’의 해결을 위해 현재적 수준에서 어느 정도까지 합의할 수 있는지를
노사가 심도 있게 논의해 해직사태의 현실적 해결방안을 내놓는 것이 순서라고 생각합니다.
대법원에 가 있는 소송도 노사 합의의 결과로 처리하면 된다고 봅니다.
어떤 간부들은 해직기자 문제가
일개 회사의 문제가 아니기에 노사의 주체적 해결이 난망하다고 얘기한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이미 2013년 1월 ‘특별채용’ 재입사로 매듭지어진 MBC의 두 해직자는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요?
노사 간에 진정성 있는 대화로 해직자 문제를 어떻게 풀 것인가?
그리고 이를 통해 ‘해묵은 다툼을 끝내고 속으로 곪은 상처를 치유해
모두가 힘을 합쳐 어려움을 이겨내고 신명나는 방송,
준법과 공정방송이 동시에 이뤄지는 이상적인 방송’으로 나아갈 것인가를 먼저 논의하고,
그 결과를 토대로 대법원에 가 있는 소송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 논의하는 게 순서입니다.
사장과 간부들께도 호소합니다.
‘욕심이 없으니, 조금만 더 기다려 달라’는 구두선으로 헛된 기대를 갖게 하지 마십시오.
복도에서, 엘리베이터 안에서, 원하지도 않는 스킨십으로 동정하려들지 마십시오.
노사가 주체적으로 해결하지 않는 한, 외부에서는 아무도 도울 수 없습니다.
노사가 주체적으로 해결한다고 외부에서 막을 일도 없습니다.
노사가 주체적 해결을 시도하면 자신의 앞길에 먹구름이 드리운다고 생각,
이제는 그만할 때도 되지 않았나요?
회사에서 해직자를 조우하는 게 여러모로 불편하다는 것 알고 있습니다.
저 역시 불편하지만, 꾸역꾸역 회사에 나오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해직자 문제를 우리 스스로 해결해야 하고, 그 방안을 포기하기에는
아직 이르다는 순진한 생각 때문에 주변에 해직자가 있다는 걸 의식시키기 위함입니다.
진정으로 회사가 위기이고, 해직자들의 고통이 크고,
회사의 불안정 상태가 너무 오래가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해직자 문제 해결을 위한 노사 협상에 실질적으로 나서기 바랍니다.
해직자들도 노조원인 이상, 진정성이 전제된 노사 합의에 따르지 않을 이유가 없습니다.
현덕수.
(메일센터에 올린 법무팀장의 글을 전해 듣고, 저 개인의 생각을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