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 공개된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의 사찰 문건을 마주하며
참담한 심정을 억누를 길이 없다.
우리의 일터 YTN의 대표이사라는 배석규 씨가
실은 '현 정부에 대한 충성심'을 발판으로 그 자리에 올랐음이 만천하에 드러났기 때문이다.
대선 캠프에 있었던 적이 없고 무엇보다 자신은 YTN 출신이므로 낙하산이 아니라는
배석규 씨의 강변 역시 모든 근거를 상실했다.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는 자세가 언론인의 본령이라고 굳게 믿었던
우리의 순진함에 자괴감이 들 지경이다.
그런데도 배석규 씨는 "나도 피해자"라는 망언을 거침없이 내뱉고 있다.
이 세상 그 어떤 사찰 피해자가 사찰 주체의 지원에 힘입어
한 언론사의 사장에 임명되고 연임까지 밀어붙일 수 있다는 말인가.
국가의 불법 사찰로 삶을 송두리째 난도질 당한 김종익 전 KB한마음 대표 같은
'진짜 피해자'들을 욕보이는 말이 아닐 수 없다.
당장 우리는 현장에서 어떻게 고개를 들고 다닐지부터가 걱정이다.
시청자들은 이미 우리를 정부에 충성하는 사장의 아바타쯤으로 여기고 있고,
취재원들도 등을 돌리고 있다.
배석규 씨와 간부진은 툭하면 시청률을 거론하며
애사심 강한 사원들을 을러대고 있지만,
그에 앞서 YTN의 신뢰가 땅에 떨어진 지 오래다.
그리고 한번 잃은 신뢰를 되찾기란 시청률을 올리는 것보다 훨씬 어렵다.
간부들에게 호소한다.
YTN 내부 인사가 불법 사찰에 적극 가담한 정황이 뚜렷해졌는데도,
‘유감 표명’으로 사안을 얼렁뚱땅 넘기려 하는가.
간부들은 정권의 언론 장악 음모에 양심을 팔아넘긴 자를 발본색원함으로써
침묵의 늪에서 벗어나라.
또 방송을 살리기 위해 방송을 잠시 접은 후배들의 피눈물을
‘정치 놀음’으로 치부하며 눈감는 비겁함을 즉각 거두라.
마지막으로 배석규 씨에게 말한다.
지난 2009년 8월 배석규 씨가 사장 직무대행을 맡은 뒤로
YTN은 암흑의 터널을 지나고 있다.
온갖 인사 전횡과 언로 차단으로 사원들의 손발은 묶였고 입은 틀어 막혔다.
그러나 배석규 씨가 사리사욕을 채우려
YTN을 망가트리며 공정방송을 제물로 바치는 일은 여기까지여야 하며, 여기까지가 될 것이다.
총리실 문건에서 ‘강단과 지모를 겸비했다’는 평가를 받았던가?
정권으로부터 받은 극찬에 의기양양해 있을지 모르지만,
배석규 씨가 YTN에서 강단과 지모를 발휘할 기회는 이제 단 한 차례면 족하다.
물러나라. 이번이 강단과 지모를 뽐낼 마지막 기회다.
YTN에 대한 애정이 조금이라도 남아있다면,
더는 구성원들을 치욕의 수렁으로 몰아넣지 말라.
YTN 창립 멤버로서의 자존심을 지키고 싶다면,
비참한 말로를 재촉하지 말고 떠나라.
10기 일동
박기현 이성우 홍주예 황혜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