끈이 있는 것 같다.
친구 작업실에 도착하니, 쌍수를 들고 환영한다. 어서 오라며, 도와줄 것을 묻는다. 초라한 작업실 한 구석에 앉아, 창가로 행인들의 머리를 관찰하고 있었나 보다. 여기 오래 있다 보면, 가끔 보도로 뛰어 내리고 싶을 만큼 우울해져. 그러던차, 밤은 깊었지만 여느 벗이 찾아와 준 것이다. 서둘러 밥을 하고는, 디자인 얘기를 찬 삼을 성 한다. 난 애둘러 그림 등의 소사 얘기는 피하고, 무리한 요구를 부탁한다. 단거리 주자인 것이다. 시간도 없고, 목구멍에 밥을 넘길 여유도 없다, 하니 디자인 하나만 해주라. 나는 그 사이로 그림을 슥싹슥싹 해치운다. 'MB 골고다'는 그런 상태로 나온 것이다.
현 선배 밸이 요동친다. 분 단위로 벌써 몇통이 오간다. 전화를 끊으면, 친구는 누구냐며 묻는데, 나는 동변상련의 기묘한 끈을 기이하게 느끼게 된다. 친구는 대학 때, 어느 교수를 몰아내려다 퇴적 조치의 중징계를 당한 전력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나는, 너와 다를 바는 없지만, 하다가 친구는,
아니 나 보다 더 힘드시겠지 하고 운을 끊는다.
진자가 요동쳤다. 밥이 됐나 보다. 고개 돌려 디자인에 몰입 중인 친구는, 몇 가지 상념에 빠져 있는 것도 같다. 아니면 일상에 함몰 돼, 진지했던 과거는 평이한 일상이 돼 버려, 그런 끈으로의 감정도 무던해 졌을지도 모른다. 찬이 없어 미안하다며, 조악한 작업공간을 뛰쳐나온 친구의 자리엔, 아물지 않은 상처가 있다. 울분 없겠고, 응분 없겠던가? 그냥 평이하게, 아닌 척 너스레 떤 셈이었겠지.
식탁에 앉아 서둘러 밥을 씹는다.
'어느 것'에 대한 발분지설은, 잘 먹고 잘 사는 것으로부터 시작되나 보다.
공기를 비우자, 현 선배의 전화가 또 다시 핸드폰서 요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