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6년 4월 28일 서울대학교 앞 신림4거리 일명 녹두거리. 청년 2명이 건물 옥상에서 경찰과 대치하고 있었습니다. 청년들은 경찰들에게 가까이 오지 마라고 외치며 가까이 오면 라이터 불을 부치겠다고 경고했습니다. 청년들의 몸엔 이미 시너가 뿌려져 있었습니다. 경찰들은 청년들의 경고를 듣지 않았습니다. 펑 하는 소리와 함께 청년들의 몸에 불길이 솟아 올랐습니다.
두 청년은 서울대학교 정치학과 4학년 이재호, 미생물학과 4학년 김세진이었습니다. 83학번 두 학생은 85학번 후배들이 전방입소를 거부하는 시위를 주도 하고 있었습니다. 분신 뒤 이재호와 김세진은 곧바로 한강성심병원으로 옮겨 졌지만 김세진은 5월초에 이재호는 5월말 숨을 멈췄습니다. 20 여년이 지난 지난해말 정치학과 83학번 몇몇이 만났습니다. 재호가 분신하기 전인 4월 26일과 27일 그를 만났던 친구들은 그가 분신을 할 것이란 말을 듣지 못했습니다. 아무도 그런 결심을 눈치채지 못했습니다. 전두환 군사정권 시절 반전반핵 시위를 주도하는 것은 목숨을 걸어야 하는 일이였지만 두 청년이 스스로 목숨을 끊을 생각은 없었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수배중인 운동권 학생을 잡으면 경찰에게 특진과 엄청난 특혜가 주어지던 시대. 공권력은 두 청년의 숨을 거두어 갔습니다.
용산에서 셋방살이하던 가난한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대부분 50대 우리들의 아버지들이고 70대 노인도 있었습니다. 경찰은 참사의 원인을 철거민들에게 돌리기 바쁩니다. 청와대 김 은혜 부대변인은 용산 참사와 관련해 "지금까지의 사고를 보면 시위의 악순환이 계속됐다"며 "이번 사건을 계기로 과격시위의 악순환을 끊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문제가 커질 조짐이 일자 청와대는 "김 부대변인의 발언은 개인 의견으로 정리됐다"고 해명했습니다. 백억대 부동산 자산가 김은혜 부대변인에게 셋방살이하는 사람들의 참사는 화염병 시위를 한 사람들의 자업자득이라고 주장하고 싶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철거민들이 많은 양의 시너를 갖고 있는 것을 알면서 경찰특공대를 투입한 것은 시위진압에만 신경을 썼지 철거민들의 안전과 목숨은 안중에 없었다는 반증입니다.
우리에게 정의가 없고 역사가 없고 상식이 없고 양심이 없고 오직 있는 것은 천민 자본주의의 사욕과 부패 그리고 약육강식의 논리만 있다면 우리는 지금 어떻게 되었을 까요? 대통령 후보 특보 출신이 언론사 사장에 오는 것에 아무 저항하지 못하는 언론이 사회의 부조리에 대해 사회적 약자를 위해 어떤 말을 할수 있을까요? 권력은 권력에 저항하는 세력의 입을 틀어막고 싶어 합니다. 상식을 지키는 언론, 정의가 살아숨쉬는 언론이 공권력에 의한 살인을 막을 수 있습니다.
2009. 1.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