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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택남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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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호] 인권 상실의 시대

마니아 편집팀 | 2009.07.06 | 조회 8978

#장면1. 

정병두 서울중앙지검 1차장검사가 PD수첩 수사 결과를 발표하던 날. 사실 수사 결과는 미리 조금씩 알려져 왔기 때문에 김빠진 맥주에 가까웠습니다. 이날의 하이라이트는 바로 PD수첩 제작진의 이메일 공개였습니다. 차장검사는 작가의 이메일을 거침없이 공개했습니다.  'PD수첩 수사 결과' 발표가 아니라 'PD수첩 제작진 이메일 내용' 발표장이 돼 버렸습니다. 검찰은 제작진이 현저하게 공평성을 잃은 것이 맞는지에 대한 국민의 판단에 중요한 근거 자료가 된다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PD수첩 제작진의 사상과 양심을 국민들이 심판해 달라는 얘깁니다. 법정에서 증거 능력을 인정받을 수 있을지도 모르는 내용을 수사 결과 발표장에서 공개한 것은 이해가 되지 않는 대목이었습니다. 1년 만에 수사 결과를 내놓으면서 여론에 호소해야 할 만큼 급했나 하는 측은함 마저 들었습니다. 공개 여부를 놓고 내부적으로 고민도 많이 했다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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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히 그랬을 겁니다. 사생활 침해 논란은 물론 통신비밀보호법을 어기는 일인지도 알아봤어야 했을 테니까요. 대한민국 검찰이 수사 결과를 발표하는 자리에서 실정법을 위반하는 경우가 있어선 안 될 테니까요. 하지만 더욱 근본적인 문제는 검찰에서 진술한 내용도 아닌 개인의 이메일을 수사기관이 마음껏 뜯어본 뒤 이를 마음대로 공개해도 된다고 생각한 잔인함과 가벼움입니다. 이메일 압수수색이라는 쉬운 방법으로 피의자의 정신세계를 마구 해체해 입맛에 맞는 부분만 매스컴에 공개하다니요… 제게도 그런 상황이 생길 수 있었기에 가슴이 꽉 막혔습니다.


#장면2.

저는 지난 2월부터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 출입하고 있습니다. 매일 서울지검에 출근해 이곳에서 기사를 씁니다. 그런데 지난달 제 이메일을 검찰에서 들여다봤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알고 보니 검찰은 아니더군요. 경찰이었습니다. 검찰은 경찰이 압수영장을 신청했고 그 필요성이 있다고 판단해 법원에 청구해 준 것뿐이라고 했습니다. 참고로 저는 선후배 20명과 함께 업무방해 혐의로 회사에서 고소된 적이 있습니다. 여하튼 제 문제는 지난 5월 종결됐습니다. 그리고 한 달 뒤 이메일을 수사기관이 뒤졌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겁니다. 말로만 듣던 이메일 압수수색. 저도 모르는 사이에 누군가가 제 이메일을 훑고 지나간 겁니다. '왜? 언제? 무슨 내용을?…' 아무것도 알 길이 없었습니다. 바퀴벌레 한 마리가 제 머릿속을 헤집고 다닌듯한 느낌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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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이 뒤진 제 이메일은 지난해 7월부터 올해 3월까지, 자그마치 아홉 달치나 됩니다. 그들은 제 인생의 아홉 달을 마치 녹화된 CCTV 화면을 재생하듯이 들여다봤을 겁니다. 도대체 어떤 내용을 흥미롭게 봤을까요? 재미있는 내용이 있긴 있었을까요? 경찰은 제 이메일 중에서 어떤 부분을 보고 싶었을까요? 누군가와 은밀한 지령을 주고받은 증거를 포착하기 위해서였을까요? 제가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인지 알고 싶어서였을까요? 아니면 별 관심은 없지만 혹시나 뭐하나 걸릴지도 모르니까 무턱대고 제 인생 아홉 달의 기록을 일단 압수해 놓은 것일까요? 특별히 수사에 필요한 건 아니지만 너무나 쉽게 YTN 기자들의 행적과 사상을 추적할 수 있기 때문에 이메일을 압수한건 아닌가요? 혹시 모르니까 일단 챙겨둔 거 아니냐는 겁니다. 저희 생각과 저희 사생활과 저희 취재 정보와 저희 스케줄을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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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사기관에 묻겠습니다. 대한민국 국민의 인권을 이렇게도 간단하게 무시했다면 그에 합당한 이유가 있었겠지요, 뭡니까? 그래도 누구처럼 이메일이 공개된 건 아니니까 다행으로 생각해야 합니까? 검찰이나 경찰이 너무나 당연하게 피의자들의 이메일을 매스컴에 공개하는 인권 상실의 시대가 얼마 남지 않았을 수도 있으니까요. 오늘 제 이메일에서 발송될 이 원고도 언젠가 압수수색 대상이 될까 상당히 걱정 됩니다. 끝


글 : YTN 보도국 신호 조합원(검찰 출입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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