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5일 새벽 방송된 MBC 100분 토론에서 진행자인 손석희씨에 대한 ‘좌파 논란’이 제기됐습니다. 진보측 패널로 나온 진중권씨가 “김미화씨가 좌파다. 윤도현씨가 좌파다. 심지어 손석희씨가 좌파라고 한다”며 보수의 좌파 딱지 붙이기를 열거하자 손석희 사회자가 “제가 거기 왜 끼냐”며 “저는 굳이 따지자면 인본주의자”라고 해명했습니다. 그러자 보수 패널로 나온 전원책 변호사가 “인본주의자, 인문주의자, 휴머니즘 자체가 바로 좌파의 시작”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런 보수세력이라면 이명박 정부 들어 정치적 문제로 강제 해직된 기자들이나 선생님들도 좌파로 몰아붙일 것이라 생각됩니다. 그렇다면 뉴스전문방송 YTN에 대통령후보 특보출신이 사장으로 투입되는 것은 온당치 않다는 지극히 상식적인 주장이 과연 좌파로 매도될 만한 일인지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실제로 YTN에서 낙하산 사장 구본홍씨에 줄을 서서 여섯 명의 기자들을 해직하고 수많은 조합원들에게 정직 등 중징계를 내리는데 앞장 선 사람들은 구본홍씨를 반대한 조합원들을 좌파라고 여기고 있는 듯합니다. 심지어 어떤 간부는 한 해직기자에게 보낸 문자메시지에 “너희 같은 탈레반하고는 대화하지 않겠다”라는 말을 서슴지 않기도 했습니다. 노조가 탈레반이라고 주장한 그 간부는 미 제국주의의 앞잡이로 동족을 미국에 팔아넘기는 떡봉이 같은 자가 돼서 욕망을 채우고 싶은 속내를 드러낸 것이라 생각됩니다.
우리 국토가 남과 북으로 나뉘지 않았더라면 우리민족이 자본주의 진영과 사회주의 진영으로 분리되지 않았더라면 21세기가 돼서도 이런 비인간적인 색깔론이 기승을 부리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100분 토론에서 보수논객인 박효종 서울대 교수의 말은 일부 유효합니다. 박효종씨는 “좌파·우파개념이 비하적 개념은 아니다”며 “손 교수를 좌파로 얘기했다고 해서 비하적 개념으로 이해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습니다. 문제는 프랑스 혁명 당시 의회에서 단순히 왼쪽에 앉아서 좌파로 명명된 진보세력이 대한민국에선 보수 수구세력에 의해 빨갱이 좌파로 낙인 찍혀지면 정치적으로 힘을 쓰지 못하는 구조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보수세력이 인본주의자, 휴머니즘 자체가 좌파라고 한다면 해직기자인 저도 좌파의 굴레를 벗어날 순 없을 것 같군요. 낙하산을 낙하산이라 주장하고 반대한 것이 좌파의 이념에서 비롯된 것이라 할 수 없지만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위해 최소한의 양심을 지키려고 노력한 것엔 동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지난 3월 총파업을 끝내고 4월 1일 YTN 노조가 사측과 화합의 정신에 합의한 것은 조합원들이 낙하산 사장에 굴복한 것이 아니고 사람을 소중히 여기는 인본주의와 휴머니즘 정신에 충실했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사측과 보수 수구세력에 아쉬운 것은 그들이 좀 더 사람의 얼굴로 세상을 대했으면 하는 것 입니다. 사측은 오늘도 사람답게 살기 위해 내부고발이란 위험을 무릅쓴 조합원에 대해 중징계를 다시 내리려 하고 있습니다. 그 조합원이 좌파도 아니고 파렴치범도 아니고 더더욱 회사를 위험에 빠트릴 만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은 상식이 있는 사측 간부도 알고 있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인류의 역사는 인간의 자유의지가 확대되는 과정이었습니다. YTN 노조가 과정은 어렵지만 이길 수밖에 없는 싸움을 하는 토대도 우리 노조가 바로 인간의 얼굴을 하고 있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 우장균 (15번째 해직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