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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택남 칼럼

YTN마니아는 항상 여러분과 함께합니다.

내 친구 정유신

dreamace | 2009.04.30 | 조회 17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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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내 친구다.

그것도 심하게 친한 친구다.

우리는 친할 수밖에 없는 친구다.

우리는 같은 대학 같은 과를 같은 해에

단둘만 똑같이 2년 늦은 늦깍이 신입생 동기로 만났다.


우린 같이 대학생활을 즐겼고

함께 수업 땡땡이를 쳤고, (나는 그의 학번을 지금도 외우고 있다.)

같이 당구를 익혔고

둘이 한 팀이 되어 신문방송학과 과내 당구대회 4강에 올랐고

둘이 한 팀이 되어 모그룹이 선발하는 대학생선발 해외연수를 갔고

둘이 같은 날 군대에 입대를 했다.

그리고 함께 복학해 많은 밤을 함께 새우며 과제를 해냈고,

역시나 함께 졸업을 했다.


우리의 졸업식에는 두 어머니도 함께

나란히 학사모를 하고 사진을 찍을 만큼

그는 나의 대학시절 마음을 터놓는 진정한 단짝이었다.


그리고 졸업후 나는 더이상 그와 함께 하지 못했다.


IMF시절 혹독한 취업난 속에,

나는 '현실론'을 내세우며 눈높이를 낮춰 광고홍보대행사에 취직했다.

고교 방송반을 거쳐 대학교 방송반 대표 아나운서로 이름을 날리던 그는

신문방송 전공과 함께 초지일관 방송이라는 삶의 일관성 속에,

고시보다 어렵다는 지상파 방송사 PD가 되기위해  '언론고시' 수험생의 길에 올라 꿈을 이어갔다.


졸업후 첫 월급을 탔을 때, 나는 백수 친구를 대신하는 마음으로 그의 어머니께 속옷을 선물해드렸다.


언론인이 되고자한 친구의 꿈의 실현은 시기의 문제일 뿐, 대기업 공채 합격을 접고

자발적으로 백수가 된 친구의 속을 긁을 염려는 애시당초 없었다.


그런 친구가 10년전 단한번 내게 서럽게 눈물을 보인적이 있다.

고시보다 어렵다던 지상파 방송사 PD 시험에 양방송사에 모두 최종면접에서

아깝게 마지막 고배를 들었을 때였다.


"자신의 모든 꿈은 방송"이라고 했다.

 그런데 "하고 싶어도 할수가 없어 너무 속이 상해서 눈물이 난다"고 했다


난 어떤 위로의 말도 찾을 수가 없었다.

가장 중요한 PD최종면접시험을 남겨두고 내 아버님이 갑자기 돌아가셨고,

그는 그 중요한 시기에 만사를 제쳐두고

내 아버지의 빈소가 있던 전남 광양까지 한달음에 와서 밤을 꼬박 새우고 갔다.

그는 최선의 상태로 면접을 볼 수가 없었을 것이다. 


잠시 상심하던 시간을 털고,

그는  때마침 출범한지 얼마 되지 않은

"한국의 CNN"을 표방하며 등장한 24시간 뉴스채널방송사 YTN에 입사를 했다.


누구보다 아침잠이 많아 학창시절 서로 오전 1교시는 피하던 친구가, 24시간 뉴스채널이라니...

주변에서 그를 알던 동기들은 웃음섞인 걱정을 해줬다.

나의 걱정은 기우였고, 그는 사회부기자 초년병 시절 밤낮없이 동분서주하며

10여년이 넘게 준비된 재능을 꽃피우기 시작했고,

경제부, 교육부, 검찰출입 기자를 거쳐, YTN의 꽃이라 인식되던 '돌발영상'의 제작을 맡았다.


그런 일관된 친구의 저력과 소박한 삶속의 꾸준한 충실이 이뤄낸 성과에

진정 축하하고 싶었고 자랑스러웠다.


저널리즘에서 비판의식이 아주 중요한 덕목이지만,

그렇다고 친구가 정치적인 아해는 절대 아니었다.

대학시절 그 흔한 데모를 앞장서서 한것도 아니고,

방송축제때 드라마제작이나 취재보도론에서 두각을 나타낼 뿐이었다.


사이 나는 결혼을 했고, 그는 사회를 봤다.

사이 나는 한번 큰 수술을 했고, 그는 일착으로 병실을 찾아와 그리도 땡기던 순대와 김밥을 챙겨왔다.

역시나 그는 사회적 약자를 잘 챙겨준다.


나의 결혼생활이 즐거워질 무렵, 그는 그의 출입처에서 평생의 반려자를 만나 결혼을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가까운 친구들에게 집들이 날짜를 알렸다.

그리고 약속한 그날, 우리는 집들이를 하지 못했다.


나랑 전혀 상관없을 줄 알았던,

심지어 <그래도 경제가 우선>이라며 우리집에서 몰표가 나왔던 이명박씨가

자기선거를 도왔던 사람을 대뜸 YTN사장으로 보내는 바람에,

졸지에 우리들의 소박한 집들이는 당일날 갑자기 취소되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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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에서 배운대로 '언론인'의 길을 실천했을 뿐인데, 그는 곧이어 '해직'을 당했다.

10년을 준비해서 어림 10년을 다닌 회사에서 너무도 허탈하게 말이다.


그런데 그는 그가 정말 잘하던 '취재'말고 '투쟁'으로

신문방송학과 동기들이 선망해 마지 않던

'한국기자상'을 <돌발영상>팀으로 수상했으니, 상복(?)을 축하해줘야 하는 것일까.....


점심시간, 회사일을 잠시 접고 프레스센터 시상식에 갔다가 때늦은 눈물이 나서 혼났다.

친구의 마누라도 와 있는데 다큰 놈이 눈물이 나려니 영 겸연쩍어서

나는 시상식장의 부페도 못먹고, 그냥 점심을 굶고 돌아왔다.

나는 하루 굶었지만 친구는 그렇게 '해직'된채

그렇게 불편한 점심으로 300일을 버티던 무렵이었다.


'저널리즘'을 나도 전공했지만, 그리고 저널리즘을 전공하고도

저널리즘에 빌붙은 광고를 업으로 생업을 하는 조금은 우회한 인생이지만,

나는 늘 친구가 부럽고 자랑스럽고 또 우리가 함께 공부한 '저널리즘'을 실천해줘서 고마웠다.

YTN의 명품 프로그램 <돌발영상>의 PD가 되어 자랑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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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인이 너무 되고 싶어, 될 수 밖에 없어서 10년전에 울었던 그가

다시 우는 사진을 우연히 인터넷 뉴스 검색에서 만나자 나도 그만 눈물이 핑 돌았다.


<돌발영상>이 돌아왔는데 정유신은 없다.


나는 그가 우는 이유를 안다.

그는 <방송>을 하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그게 다다.


그는 원래 아무도 미워하지 않던, 장난기 있고 의리 있던 내 친구였을 뿐이다.


글 작성 : 정유신의 친구, 이병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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