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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택남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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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직일기] 철학의 부재

마니아 편집팀 | 2011.01.17 | 조회 4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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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의 부재”


  “저는 청와대 뒷산에 올라가 끝없이 이어진 촛불을 바라보았습니다. 시위대의 함성과 함께, 제가 오래전부터 즐겨 부르던 아침이슬 노랫소리도 들었습니다. 캄캄한 산중턱에 홀로 앉아 시가지를 가득 메운 촛불의 행렬을 보면서, 국민들을 편안하게 모시지 못한 제 자신을 자책했습니다.”

  2008년 6월 19일 이명박 대통령의 특별 기자회견 연설문 가운데 한 부분입니다. 이 대통령이 이 연설문을 낭독할 때 저는 청와대 출입기자로 대통령 바로 앞에 앉아 있었습니다. 2008년 10월 6일 YTN 사태로 강제해직돼 청와대 출입 기자에서 쫓겨나기 4개월 전이죠. 연설문은 기자회견 전에 배포돼 저는 당시 대국민 사과문을 읽는 대통령의 얼굴을 무심히 바라봤습니다. 그런데 가장 감동이 전해져야 할 ‘아침이슬’ 대목에서 전혀 진정성이 전해지지 않았습니다. 대통령의 얼굴 표정은 그냥 누군가 써 준 원고를 읽는 듯 했습니다. 그로부터 2년 뒤 2010년 5월 11일 이 대통령은 청와대 국무회의에서 “촛불시위 2년이 지나 많은 억측이 사실이 아닌 것으로 판명됐음에도 반성하는 사람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이 대통령이 요즘도 아침이슬을 즐겨 부르는지 궁금합니다.


  2010년 8월 15일 이 대통령은 광복절 연설문에서 ‘공정한 사회’를 화두로 던졌습니다. 200자 원고지 30매에 ‘공정’이라는 말이 10번 나왔습니다.  2010년 12월 8일 김무성 한나라당 원내대표는 예산안 강행 처리에 대해 “우리 국민과 사회를 위한 정의로운 행동이었다.”고 말했습니다. 이명박 정부가 즐겨 구사하는 용어를 빌려 말하면 공정한 사회 구현을 위한 구체적인 액션 플랜이 바로 ‘형님 예산’ 강행 처리였습니다. 노무현 정부가 참여정부라 고 한 것처럼 이명박 정부는 지금이라도 공정한 정부로 하는 것이 어떨까 제안합니다. 그런데 전두환 정권도 ‘정의사회 구현’을 주장했으니 그것도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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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0년 교수들이 뽑은 올해의 사자성어가 ‘장두노미’(藏頭露尾)로 선정됐습니다. ‘쫓기는 타조가 머리를 덤불 속에 숨기지만 꼬리는 미처 숨기지 못해 쩔쩔매는 모습’을 표현한 것이라고 합니다. 교수들은 4대강 개발 논란과 천안함 침몰 등 많은 사건이 있었지만 그때마다 현 정부가 국민을 설득하고 의혹을 해소하려는 노력보다 진실을 감추기에 급급한 모습을 보였다고 선정 이유를 밝혔습니다. 전혀 공평하고 올바른(공정한) 정치를 하지 않으면서 이명박 정부는 손바닥으로 얼굴을 가리고 공정사회를 외치는 모습입니다. 그러더니 올해 대통령 신년연설에서 정의사회구현은 슬며시 축소되고 다시 경제와 안보가 화두로 제시 됐습니다. 한마디로 통치 철학의 부재입니다. 실용주의도 철학이라 하니 실용을 주창하는 것이 나을  것 같습니다.   


  정치 지도층의 철학은 부재하지만 시민들이 깨어 있으려고 노력하는 모습은 우리의 희망입니다. 며칠 전 밤 12시가 넘어 TV를 보다 EBS에서 `정의란 무엇인가`의 저자 마이클 센델 교수가 하버드에서 강의하는 것을 담은 방송을 우연히 봤습니다. 책 보다 재미있었습니다. 저 뿐 아니라 다른 분들도 하버드 특강 ‘정의’를 눈 비비며 봤더군요. 시청률이 EBS 같은 시간대에 비해 2배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노트 필기를 해가며 본 건 처음이다` 등 방송 후 트위터에는 강의 내용에 대한 호평도 잇따랐습니다. 수년 전 한 신문에 8년째 노숙자 생활을 해 온 어느 50대의 말이 떠오릅니다.  그 분은 노숙자 등을 위해 마련한 ‘희망의 인문학’ 과정에 참여한 뒤 이렇게 소감을 말했습니다.


  “문학과 철학이 내 인생의 객관적 모습을 변화시킨 것은 아니다. 그러나 삶을 대하는 나의 태도는 달라지게 했다. 처음으로 딸에게 편지를 썼다.”


글 : 우장균 (제 42대 한국기자협회장, YTN 해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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