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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택남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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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직일기] 지식인

마니아 편집팀 | 2010.12.13 | 조회 5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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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인"


오늘자(12월 7일) 한 조간신문은 연평도 사건과 관련한 설문조사 결과를 1면 톱으로 보도했습니다. ‘연평도 피격사태 왜 일어났나’ 초·중·고교 학생에게 물었더니… "선생님이 그러는데… 북한 짓 아니래요"라는 제목의 기사였습니다. 제목만 봐도 어떤 내용인지 알 수 있는 기사였습니다. 우리 사회의 안보불감증과 부실한 안보교육이 초·중·고교 학생의 안보관을 무디게 만들어놓고 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전교조 등 보수언론이 말하는 좌파 선생님 때문에 청소년들의 안보관이 예전만 못하다는 뜻도 내포돼 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저의 초등학교(국민학교)때 경험을 떠올려 보면 보수언론이 걱정하는 안보교육은 어쩌면 기우에 불과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1971년에서 1982년까지 초등학교에서 고등학교를 다녔습니다. 당시 대통령은 박정희, 최규하 잠깐, 그리고 전두환이었습니다.  쿠데타를 통해 집권한 박정희, 전두환씨는 수단에 불과한 ‘반공’을 목적이라 할 수 있는 대한민국 국시로 삼았습니다. 저는 초등학교 시절 북한 사람은 얼굴이 정말 빨갛거나 머리에 뿔이 달린 줄 알았습니다. 당시 초등학교 선생님이 빨간 얼굴에 머리에 뿔난 북한 사람을 그려놓고 ‘무찌르자 공산당’이라고 쓴 제 친구가 만든 포스터를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했기 때문입니다. 1980년 고등학교 1학년 때 광주항쟁이 일어났을 때 당시 언론에서 보도한 대로 저는 북한과 간첩이 광주민주화운동을 배후 조종한 줄 알았습니다.


1983년 대학을 들어갔습니다. 당시 이홍구, 김학준 교수 등 훌륭한 선생님들도 많았지만 학교 선배들과 함께 하는 독서 모임에 관심이 더 많았습니다. ‘해방전후사의 인식’ ‘민중경제론’ ‘역사란 무엇인가’ ‘철학에세이’ 등 책들은 저처럼 책읽기를 좋아하지 않는 대학생에게도 책을 읽도록 만들었습니다. 12년 동안 국민교육헌장을 외우며 반공교육을 잘 받은 청년들에겐 책 내용 자체가 충격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충격 가운데 가장 압권은 리영희 선생님이 쓴 ‘전환시대의 논리’였습니다. 지구상에서 남한은 물론 모든 약소국에 은혜로운 나라 미국이 베트남에서 무엇을 했는지가 고스란히 담겨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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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읽은 청춘의 독서에서 유시민씨는 “리영희 선생은 나에게 철학적 개안(開眼)의 경험을 안겨준 사상의 은사이며, 전환시대의 논리는 품위 있는 지식인의 삶이 어떠해야 하는지 가르쳐준 인생의 교과서였다”라고 말했습니다. 청춘의 독서에서 발췌한 ‘전환시대의 논리’엔 이젠 기억이 나지 않는 이런 대목도 있습니다. 리영희 선생님은 “어제 수습기자로서 선배들의 무력과 타락과 민중에 대한 배반을 소리 높이 규탄하던 사람이 내일은 벌써 ‘골프는 결코 사치가 아니야, 건전한 국민 오락이야’라는 말을 하기 시작한다. 그러다가 논설위원이 되면 ‘학생의 신분은 공부만 하는 것, 현실은 정부에게 맡기기를’ 따위가 아무 저항감 없이 나오게 된다.”고 말했습니다. 대학시절 어떤 책이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지식인과 지식기사’를 다룬 내용이 문득 떠올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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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영희 선생님이 타계했습니다. 한국기자협회 회장이란 자리 덕분에 리영희 선생님 ‘민주사회장’의 부위원장이란 과분한 영광을 얻게 됐습니다. 보수와 진보의 차이를 떠나 선생님은 후배 기자들에게 참 기자와 지식인의 표상을 보여 주었다고 생각합니다. 아직도 연평도 사건 등 냉전의 아픔이 남아있는 한반도에서 선생에 대한 평가는 지금보다는 훗날 역사가 말해줄 것입니다. 이 땅에 평화가 강물처럼 넘쳐나고 정의가 들꽃처럼 만발할 때 참 지식인 리영희 선생님의 글을 후세 통일 교과서에서 볼 수 있는 날이 올 것을 기대합니다. 선생님의 말씀대로 대한민국이란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날 수 밖에 없습니다.


글 : 우장균 (제 42대 한국기자협회장, YTN 해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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