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궁 판사와 해고 판사
영화 <부러진 화살> 흥행 이후 사법부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사법부 비판은 영화의 픽션 여부와 크게 관계가 없다. 영화를 보지 않거나 석궁 사건을 잘 모르는 이들도 사법부 비판에 가세하고 있다.
석궁 사건과 관련해 사법부 비판 여론을 보며 YTN 해고 사태와 관련한 악몽이 떠오른다. 2008년 10월 해고된 YTN 기자 6명은 이듬해 11월 사법부 1심에서 전원 ‘해고 무효’ 판결을 받았다. 그러나 2010년 2심 재판부는 노종면·현덕수·조승호 기자의 해고가 정당하다고 판결했다. 1심 판결과 2심 판결 사이 달라진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1심 판결에서 재판부는 YTN 기자들이 구본홍 사장에 대한 반대 투쟁이 ‘공정 보도’와 언론사의 정치적 중립이라는 공적 이익을 지키려는 동기에서 비롯됐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2심 재판부도 판결 전까지 해직 기자들의 손을 들어주는 것처럼 보였다. 당시 2심 재판부는 해직기자 6명의 전원 복직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화해권고결정문을 노사 양쪽에 보냈다. 해직자 쪽에는 복직하는 대신 2008년 이후 2년 6개월간의 해직 기간에 지급되지 않은 임금을 포기하고, 회사 쪽에는 임금을 지급하지 않는 대신 이들을 조건 없이 복직시키라는 내용이었다.
재판부의 화해 권고를 거부한 쪽은 회사였다. 해직자들이 투쟁의 정당성을 강변하는 상황에서 화해를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것이 회사 주장이었다. 회사 쪽의 화해 거부에는 결국 2심에서 1심처럼 지더라도 이를 감수하고 대법원까지 가보겠다는 뜻이 담겼다. 대법원까지 가도 소송비용이나 해직자에 대한 보상 등에 있어 YTN 사장 개인 돈이 들어가는 것은 아니었다.
2심 재판부가 왜 화해안을 거부한 회사측의 손을 들어줬는지 지금도 이해가 가지 않는다. 2심 재판부는 생활인으로서 사형선고와 다름없는 해고 판결을 했지만 왜 사전에 화해안을 냈는지에 대해 공식적인 설명이 없었다. 재판부는 당시 법정에서 해고 판결만 하고 판결문 전체를 읽지 않고 퇴정했다.
YTN 해직기자들은 판결에 불만을 가졌지만 석궁 교수처럼 재판부에 대해 물리력을 행사한 적도 없고 그런 생각을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그러나 영화 <부러진 화살> 개봉 뒤 사법부에 대한 비판 여론이 왜 넘쳐나는지는 이해할 수 있다. 권력과 권위는 분명히 구분된다. 지금 사법부는 권위는 없고 권력만 있을 뿐이다. 권력은 그냥 복종이지만 권위는 스스로 복종하게 만든다. 지금 사법부의 권위에 시민들이 스스로 복종하는지 아니면 사법 권력에 할 수 없어 복종하는지 판사들 스스로 한 번 생각해 봐야 한다. 사법부가 권위를 찾기 위해서는 힘없고 돈 없는 사람들에게 좀 더 마음과 귀를 열어야 할 것이다. 유전무죄 무전유죄는 어느 시대 어느 사회나 있을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오늘 우리 사법부가 비판을 받는 이유는 그 정도가 어느 때보다 심하기 때문이다. 교수나 기자는 돈이 많지는 않지만 사회적으로 영향력이 있는 직종이다. 교수나 기자들이 사법부의 ‘무전유죄’식 판결에 이렇게 당하고 있는데 비정규직 노동자나 서민들은 어떻겠는가? 사법부가 사회 정의의 최후의 보루로서 제 역할을 다할 수 있도록 시민들이 시들어가는 민주주의를 다시 살릴 때이다.
- 글 : YTN 우장균 해직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