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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택남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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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직일기④] 33년만의 만남

YTN마니아 관리자 | 2009.01.08 | 조회 8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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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년전 1975년 저는 초등학교 5학년이었습니다. 그때 당시 국민학교에서 교육을 어떻게 했는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저는 10월 유신이 구국의 결단이었다고 믿었습니다. 동아일보 광고중단 사태도 어렴풋이 기억납니다.

오늘 낮 헌법재판소 근처 오래된 식당에서 동아투위 선배들을 만났습니다.  그분들은 75년 이후 지금까지 매달 17일 점심때 만났다고 합니다. 정부의 탄압으로 1975년 3월 17일 자유언론에 앞장섰던 130여명의 기자와 프로듀서, 아나운서 등이 강제 해고 된 것을 기억하기 위해서죠.  130여명이 해직됐지만 그 가운데 3분의 1 가량은 전향(?)을 한 뒤 각자 살 길을 찾아 떠났다고 합니다.

전향을 하지 않은 동아투위 선배들은 전두환 시절까지 10여년동안 형극의 세월을 걸어야 했습니다. 안기부와 경찰서에서 동아투위 기자들에게 사람을 게속 붙여 일반 기업에 취직도 못하게 했고 심지어 셋방을 얻는 것도 방해했다고 하더군요.

  동아투위가 생긴 지 얼마 뒤 조선투위도 결성됩니다. 조선투위가 결성되기까지 여러 곡절이 있었겠지만 한가지 재미있는 설이 있습니다. 조선투위에 참여했던 한 기자가 했던 말인데요, 유신치하에서 동아일보 기자들이 동아자유언론실천선언을 선언한 뒤 사회문제가 되자 조선일보 사주일가의 한사람이 조선일보 기자를 만났다고 합니다. 방씨일가는 그 기자에게 동아일보에서 자유언론을 주장하고 나섰는데 조선일보 기자도 나서야 되는 것이 아니냐고 한 것이죠. 그뒤 조선일보기자들도 유신치하에서 자유언론을 주창하고 나서다 수십명이 해고가 됐습니다. 조선투위는 그러다 80년대 중반 해체가 됐다고 합니다. 방씨일가가 조선투위에 당시 10억원의 돈을 주었다고 합니다.

동아투위 선배들은 이제는 대부분 60세에서 75세의 나이가 됐습니다. 당시 20대 초반이었던 동아방송 여자 아나운서들은 50대 중년이 됐습니다. 언론인에 대한 대량 강제 해직 사태인 동아 투위와 ytn 투쟁은 33년이란 세월의 간극이 있지만 한가지 커다란 공통점을 갖고 있습니다. 특정 정치세력이 정권을 유지하거나 재창출을 하기 위해서는 언론을 장악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언론 자유를 주장하는 언론과 언론인을 가만 놔둬선 안된다는 것이죠. 언론은 민주주의를 지키는 첨병입니다.  

동아일보 기자들이 33년전 언론자유를 수호하기 위해 온 몸을 던졌던 지극히 상식적인 직업 정신이 ytn에서 계승될 수 있을지, 우리의 민주주의 역사가 지켜볼 것입니다.  

2008. 12. 17
해직기자 우장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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