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카사브랑카는 1942년 제작됐지만 세기가 바뀐 요즘도 지상파나 케이블을 통해 볼수 있는 명화입니다. 영화평론가들은 2차대전이 한창이던 그때 어떻게 북 아프리카 모로코의 한 도시를 배경으로 이런 세기의 명화가 어떻게 탄생했는지 불가사의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명화들이 그러하듯 카사브랑카도 마지막 장면이 압권입니다. 터프 가이의 대명사 험프리 보가트와 청순미의 상징 잉그릿드 버그만의 공항에서의 이별 씬은 영화사의 명장면으로 꼽히고 있습니다. 사막기후에 있는 카사브랑카 공항에 자욱한 안개를 끼게 설정한 것이 좀 어설프긴 하지만 그런 옥의 티가 없었다면 험프리 보가트의 구깃구깃한 트렌치코드가 주는 페이소스도 없었겠죠.
카사브랑카는 주옥같은 명대사도 남겼습니다. 우리 말 번역으로 "당신의 눈동자에 건배를" 등과 같은 남녀간의 낭만적인 대사가 많지만 사나이들 사이의 우정어린 명대사도 있습니다. 바로 마지막 카사브랑카 공항 장면에서 험프리 보가트가 프랑스 비시정권 밑에 있던 경찰국장에게 한 대사죠.
"루이, 이것이 멋진 우정의 시작일 것 같군"
영화에선 가끔 주연보다 멋있고 쿨한 역할을 하는 조연이 있습니다. 영화 카사브랑카에 나오는 경찰국장도 멋진 역할이었죠. 2차 세계대전이 유럽에서 발발하자 프랑스의 마지노선은 허무하게 무너지고 독일 수중에 넘어갑니다. 프랑스 식민지였던 모로코도 프랑스의 친 나치정권인 비시정권이 관할 하게 되는데 카사브랑카는 그런 시대적 지리적 배경속에서 탄생했습니다. 영화속 프랑스인 경찰국장도 비시정권의 녹을 먹는 공무원으로 험프리 보가트가 자신의 옛 애인인 잉그릿드 버그만을 탈출시키기 위해 독일군 소령을 공항에서 쏘아 죽였을 때 그를 체포하는 것이 당연한 임무였습니다. 그러나 경찰국장은 험프리 보가트의 팔목에 수갑을 채우는 대신 가시밭 길이 돼겠지만 멋진 우정의 길을 떠나기로 결심하죠. 영화는 험프리 보가트와 경찰국장이 안개 낀 카사브랑카 공항을 표표히 걸어가는 장면으로 막을 내립니다.
OBS 방송국은 YTN 낙하산 사장 저지 투쟁의 전철을 밟고 있습니다. OBS 방송국 노조가 낙하산 사장을 반대하자 사측은 노조원들을 인사위원회에 회부했습니다. 그런데 이 장면에서 OBS에선 YTN과 다른 멋진 조연이 등장합니다. OBS 한 간부가 10년동안 같이 일한 후배들에게 부당하게 징계를 내리려는 회의에 참석을 거부한 것이었죠.
비시정권, 낙하산 사장 모두 정통성과 명분은 없지만 인사권 등을 갖고 있는 거부할 수 없는 현실입니다. 그리워 하고 그리고 그토록 바란다 하더라도 어느 영화와 같은 일들이 이루지지는 확률은 희박합니다. 그러나 길면 길고 짧으면 짧을수 있는 우리네 인생도 어쩌면 한판 연극이나 영화와 같은 것은 아닐런지요. "인생 뭐 별거 있나요"란 시쳇말이 새삼스럽게 들립니다. 카사브랑카 영화속 경찰국장 같은 회사 간부가 2009년 OBS엔 있고 YTN엔 단 한 사람도 없음은 우리의 복일까요?
2009. 3.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