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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택남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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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태엽] 황우석, 주디 밀러, 한국의 뉴스채널 YTN

마니아 편집팀 | 2009.02.25 | 조회 8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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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미국에서 'Nothing but the Truth'라는 제목의 영화가 개봉됐나봅니다. 내용은 저도 못봐서 모르겠습니다. 다만 국내의 영화소개 기사에서는 '거짓 혹은 진실'이라고 번역했던데, 직역하면 '오로지 진실만을...'이라고 해야할 것 같습니다. 왜 미국 법정영화에 보면 증인선서 장면이 있지 않습니까. 법원 서기가 "the whole truth, nothing but the truth"라고 읽으면 증인이 그대로 따라하죠. "진실만을, 그리고 진실의 전모를" 법정에서 모두 밝히겠다는 뜻이라는군요. '언더월드'에서 미녀 드라큘라로 나왔던 케이트 베킨세일(Kate Beckinsale)이 기자로 등장하는데 CIA의 무슨 비밀을 알고도 법정에서 말하지 않아 감옥에 가는 내용이랍니다.

  이 영화의 감독은 로드 루리(Rod Lurie)인데, 1962년 이스라엘 태생에 미 웨스트포인트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했고 신문사 연예기자를 했다는군요. 세계적인 시사풍자만화가인 래넌 루리(Ranan Lurie)의 아들이라는데는 약간 놀랐습니다. 예전에 동아일보에 '루리의 세계'라는 한컷 만화가 연재됐던 기억도 나구요.

  서론이 너무 길었나요. 암튼 이 로드 루리씨가 올리버 스톤 감독에게 목을 졸렸다는군요. 스톤 감독 아시죠. '플래툰', 'JFK', '닉슨'을 만들었고, 최근에는 현직 대통령인 조지 W. 부시를 다룬 'W'를 만든 요샛말로 좀 '까칠한' 감독이죠. 2008년12월6일자 '인터내셔널 헤랄드 트리뷴' 8면 기사에 의하면, 작년(2008) 봄 캘리포니아의 한 스튜디오에서 'W'의 후반작업을 하던 스톤 감독이 'Nothing but the truth' 촬영을 하고 있던 루리 감독을 우연히 만났는데 다짜고짜 달겨들어 목을 졸랐답니다. 그러면서 외쳤답니다. "주디 밀러를 영웅으로 만들지 마!"라구요.

  대체 이 주디 밀러(Judith Miller)라는 분이 누구시길래 환갑이 넘은 스톤 감독을 그토록 흥분시킨 걸까요. 별명부터 소개해드리면 이분은 '칼 로브의 장갑'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선거 전문가로 부시 대통령의 참모이자 네오콘의 이론가인 칼 로브와의 특수관계 때문이죠. 직업은 기자입니다. 1948년생으로 1977년부터 2005년까지 '뉴욕 타임스' 기자로 일했죠. 이분이 큰 사고를 쳤습니다. "이라크에 대량살상무기가 있다"는 오보를 계속 날린거죠. 이라크전이 시작되기 전에 12건의 관련보도를 했는데 이중 10건이 오보였음이 나중에 판명됐습니다. 부시 정권은 이 보도를 근거로 여론을 '펌프질'해서 이라크전을 일으킨 거구요.

  이분의 특기가 '익명보도'입니다. "정부의 고위 관계자는..."하는 식으로 시작되는 기사 말입니다. 그게 사실은 부시 행정부의 고위관계자들이 흘린 정보거든요. 그래서 "칼 로브의 손이 움직이면, 장갑인 주디 밀러가 노랠 부른다"는 공식이 성립된 거죠. 짝짝궁이 잘 맞지 않습니까. 권력자들이 거짓 정보를 흘리고, 기자가 그걸 받아쓰면 국민들은 "그런 가부다"하고 믿게 되는 거죠. 주디 밀러가 나중에 한 변명이 있는데 가관입니다. "내가 쓴 기사가 완전히 잘못됐다는 걸 인정한다. 하지만 취재원이 틀리면 기자도 틀릴 수밖에 없다." 어떤 취재원의 정보도 검증없이 기사화하면 안된다는 것이 저널리즘의 기본 원칙 아닌가요?

  암튼 주디 밀러에 대해 약간 설명을 보태면, 한때 이 여성이 '민주투사'로 떠오른 적이 있습니다. 이른바 '리크 게이트(leak gate)' 사건 때인데요. 미 중앙정보국(CIA) 비밀요원의 신분이 언론에 누설되면서 불거지기 시작해 정치 스캔들로까지 비화된 사건입니다. 좀 지루하더라도 전모를 요약해 보겠습니다.

  2003년 7월 미국의 칼럼니스트 로버트 노박(Robert Novak)이 '워싱턴 포스트'에 게재한 칼럼에서 조세프 윌슨(Joseph C. Wilson IV)이라는 전 이라크 대사의 부인이 발레리 플레임(Valerie Plame Wilson)이라는 CIA의 비밀요원이라고 까발립니다. 윌슨은 9.11 사태 직후인 2002년 2월 CIA가 이라크 정부의 우라늄 구입 의혹을 조사하기 위해 니제르에 파견했던 인물이죠. 윌슨은 이 정보가 허위라는 보고서를 제출합니다. 하지만 이라크 침공의 명분을 찾던 부시 행정부는 윌슨의 보고서를 무시하죠. 부시가 이 때 정신을 차렸더라도 이라크 기자 문타다르 알 자이디(Muntadar al-Zaidi)의 신발공격을 당하지는 않았을 텐데 안타까운 일입니다.

  윌슨은 열심히 쓴 보고서가 무시당하자 열이 받아서 2003년 7월 '뉴욕 타임스'에 부시 대통령의 이라크 침공 논리가 왜곡된 것이라고 폭로합니다. 일주일 쯤 뒤, 이를 반박하기 위해 꼴보수 칼럼니스트 노박이 나섰는데, 문제는 윌슨을 공격하다보니 살짝 법을 어기게 됐다는 겁니다. 노박은 윌슨이 CIA 비밀요원인 부인 덕에 니제르 임무를 맡을 수 있었다면서 플레임의 신분을 누설했는데, 미국에선 정보요원의 신분을 밝히는게 범죄행위에 해당됐던 겁니다. 뭐 우리 국정원도 마찬가지겠지만, CIA는 당근 이 사건을 고발했고, 법무부는 특별검사를 임명해 수사에 들어갔습니다.

  근데 사건이 엉뚱한 방향으로 튀기 시작했습니다. 법원이 노박을 제쳐 두고 플레임의 신분을 기사화한 '타임(Time)'의 매튜 쿠퍼(Matthew Cooper) 기자와 '뉴욕 타임스'의 주디스 밀러 기자에게 취재원을 공개하라는 결정을 내렸기 때문입니다. 쿠퍼 기자는 실제 기사를 썼고, 밀러는 로버트 노박에게 얘기만 해주고 자기는 기사를 안썼답니다. 그런데 쿠퍼 기자는 조금 버티다가 취재원으로부터 신분을 공개해도 좋다는 허락을 받았다면서 법원에 이실직고를 했습니다. 하지만 밀러는 끝까지 버텼습니다.

  '취재원 보호권리'를 포기하면 앞으로 어떤 공직자가 언론사에 정보를 주겠냐는 논리였죠. 하지만 법원은 단호했습니다. "언론사라고 법 위에 존재할 수는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미국의 각 주는 기자의 신분을 보장하는 법을 채택하고 있는데, 연방법은 그렇지 않답니다. 주 법에서도 "범죄를 목격했거나 법원이 다른 방법으로는 증거를 입수할 수 없을 때"는 기자에게 증언을 강제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는군요. 밀러는 결국 옥살이를 하게 됐습니다. 일부 기자들이 지지시위를 하는 등 한 때 영웅이 됐죠. 석 달만에 취재원 중의 한 명인 루이스 리비(Lewis Libby) 부통령 비서실장의 이름을 대고 풀려났는데 그 때까지만 해도 잘 나가는 편이었죠.

  하지만 영광의 순간은 짧았습니다. 문제는 '뉴욕 타임스' 내부에서 터져나왔습니다. 주디 밀러의 기사에 대한 신뢰성 문제가 제기된 거죠. '뉴욕 타임스'는 기자 두 명에게 밀러의 기사들을 검증하도록 했고 결국 12건 중 10건이 엉터리였음이 밝혀졌습니다. '뉴욕 타임스'는 독자에게 사과하고 밀러의 사퇴를 종용했습니다. 개선장군으로 대접받던 밀러가 한 순간에 '오보 전문기자'로 낙인 찍혀 회사를 떠나게 된 거죠. 앞서의 매튜 쿠퍼 기자도 '타임'을 떠났습니다. 2007년에는 힐러리 클린턴의 미디어 자문역인 부인과도 헤어졌답니다.

  밀러의 그 뒤 인생은 좀 팍팍해졌습니다. 2007년7월에 Manhattan Institute for Policy Research라는 보수 연구기관에 취직해 기관지 편집을 담당하게 됐고, 2008년 10월부터는 Fox News의 해설자도 겸하게 됐다고 합니다. 최고의 일간지에서 최고의 대접을 받으며, 퓰리처상도 두차례나 탄 기자의 말로 치고는 덜 화려하죠. '리크 게이트'의 전말에 관해 책도 쓰고 해서 돈은 좀 만지는 모양입니다. 영화 'Nothing but the Truth'에 대해서는 "나와는 무관한 영화다. 내가 자문해준 적이 없다"고 했답니다. 실제 영화를 보고서는 "많은 일이 회상된다. 일부분은 매우 불편하다"라고 했다는군요.

  루이스 리비는 위증죄 등으로 2년6개월 형을 받았습니다. 부시가 형을 좀 깎아줬다고 합니다만 감옥에 갔다 온 뒤 아직 실업자입니다. 소싯적에 쓴 추리소설이 유명세를 타고 재출간됐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칼 로브는 감옥에 가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가 모셨던 주군인 부시는 역사상 가장 형편없는 대통령 중의 하나가 됐고, 공화당이 선거에서 참패했죠. 부시와 거리를 두려고 무척이나 노력했던 존 매캐인이 불쌍할 따름입니다.

  1931년생 할아버지인 로버트 노벅은 '리크 게이트' 이후 만만찮은 물의를 일으켰습니다. CNN 해설자로 오래 활동했던 그는 2005년10월 CNN의 생방송 대담 도중에 '리크 게이트'에 관한 질문이 나올 것 같으니까 벌떡 일어나 나가버렸다고 합니다. CNN은 그 일 때문에 사과방송을 했구요. 그후 Fox News 해설자로 옮겼는데 신디케이트 칼럼을 계속 쓰면서 "은퇴하지 않고 말안장 위에서 죽겠다"고 했답니다. 하지만 작년 7월에 뇌암 판정을 받았고 현재는 마이너 언론에 간혹 칼럼을 쓰는 걸로 만족하고 있다는 군요. 그가 감옥에 가지 않은 이유는 검찰에 '감형조건부진술(plea bargain)'을 했기 때문으로 알려졌는데 본인은 부인하고 있습니다.

  남의 나라 얘기를 장황하게 늘어놓은 이유는 이 사건이 '언론과 권력의 영원한 긴장 관계', '언론사와 언론인의 도덕성'에 관해 매우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하기 때문입니다. 한국에도 비슷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리크 게이트'와 같은 시기인 2005년에 벌어진 '황우석 사태'가 바로 그것입니다. 황교수팀의 논문조작과 언론사의 폭로(MBC PD수첩), 또 다른 언론사의 청부취재 의혹(MBC 취재방식의 문제를 제기한 YTN 보도), 현직 대통령의 인터넷 댓글, 그리고 검찰 수사와 재판 이 모든 과정에 아직도 의문이 완전히 가시지 않고 있죠. 황교수에 대한 권력의 비호 문제는 검찰 수사에서도 제대로 다뤄지지 않았습니다.

  한가지 아쉬운 것은 이 사건 관련자들에 대한 사회와 법의 심판이 미국 만큼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제가 좀 안다고 할 수 있는 언론 분야를 두고 보면 당시 모든 언론사가 일종의 애국주의에 빠져 황우석 교수팀을 싸고 돌았고, 결국 인터넷 사이트에 모인 전문가들이 조작을 밝혀냈는데도 이를 제대로 반성한 언론사는 없었습니다. 동아일보 전 의학담당기자 한명이 사표를 낸 뒤 반성하는 내용의 책을 낸 적이 있을 뿐입니다. 당시 저는 YTN의 사회부 사건데스크로 사후 수습을 담당해 이 사건에 관심이 많은 편입니다. 제가 아는 한 관련 기자나 데스크 개개인에 대한 회사 차원의 책임추궁은 거의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뉴욕 타임스'는 '영웅' 주디스 밀러의 기사를 조사해 오보임이 판명되자 퇴사시키지 않았습니까? 여기서 기분 나쁘지만 미국 언론에 '한 수 꿀림'을 느낍니다.

  하지만 최근 YTN에 경사가 한 건 있었습니다. 한국 언론계의 사표이시자 한겨레 신문 초대사장을 역임하신 청암 송건호 선생을 기리는 '송건호 언론상' 수상자로 'YTN 노동조합'이 선정된 것입니다. 그것도 황우석 사태 당시 취재 윤리 문제를 두고 치열하게 싸우던 'MBC PD수첩'과 나란히 말입니다. 당시 YTN은 내부검증을 제대로 못해 MBC에게 패하고 말았죠. YTN 노동조합의 반년 가까운 '낙하산 반대 투쟁'으로 그 부끄러움을 일거에 날려버리게 된 것을 저는 매우 기쁘게 생각합니다.

  황 교수에 대한 재판은 아직 진행형입니다. 연구비 유용이 주요 혐의인 것 같은데, 언젠가 그 부분에 대해서도 쓸 일이 있을 것 같습니다. 지금은 우선 YTN을 제대로 세우는 데 매진하렵니다. YTN 사태를 조속히 해결한 뒤, 공정방송을 위해 가열차게 투쟁해온 구성원들의 에너지를 모아 앞으로 '성역없는 보도, 진실만을 전하는 보도'로 국민들의 성원에 보답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 리크게이트는 네이버 백과사전, 쥬디 밀러 등 미국 언론인들의 후일담은 위키피디아를 참조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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