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신>
내일이면 이곳을 나선다. 여드레 만이다. 꽤 적응이 됐는데 구치소는 어떤 느낌일까?
오늘 ‘선물’받은 시집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외우지 못해 보고 적는다.)
모든 장소들은 생생한 걸 준비해야 한다.
생생한 게 준비된다면 거기가 곧 머물 만한 곳이다.
-정현종, ‘장소에 대하여’ 중에서
나는 이곳 유치장에서 살아있음을 어느 때보다 강렬히 느낀다.
저들이 죽이고자 마련한 곳에서 시인이 노래한 ‘장소’를 깨닫는다.
오 장소들의 지루함이여,
인류의 시간 속에 어떤 생생함을 한번이라도 맛볼 수 있는 것인지...
오 시인이여, 생생함이 넘치는 장소에서 또한 생생함 넘치는 장소를 옮기려 하니
‘참으로 드문 은총’ 아니오?
시인은 이렇게 노래했다.
가령 사랑하는 마음은 문득 생생한 기운을 돌게 한다.
슬퍼하는 마음은 항상 생생한 기운을 일으킨다.
올바른 움직임은 마음에 즐거운 청풍을 일으킨다.
나를 가둔 이들이여, 너희들 무엇을 사랑하며, 무엇을 슬퍼하며, 또 어디로 움직이는가?
당분가 나는 감시 카메라의 반복 회전이 지배하는 무한 공간에 머물 것이다.
이곳에서 나는 밥 때를 기다려 허기를 키우기보다 나를 가둔 저들에 대해 연민을 키우려 한다.
쉽지는 않겠지만 ‘참으로 드문 은총’을 받았으니 못할 것도 없다.
자, 늘어지게 자자. 일어나 구치소로 가자.
구치소를 나설 때 전리품으로 연민을 손에 쥐어보자.
그때는 저들을 적어도 그들이라 할 수 있기를...
2009년 3월 29일 자정 / 구본홍저지투쟁 255일 / 노 종 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