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들지 않는 남도, 한라산을 올랐습니다.
해직기자로서는 대한민국의 가장 높은 곳에서 '공정방송'을 외치고 싶었고, 아빠로서는 이제 4학년인 큰 아이에게 자신감을 불러넣어주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제주시내를 출발할 때만 해도 날씨가 좋았는데 막상 한라산에는 비가 내렸습니다. (정말 제가 산에만 가면 비가 오네요ㅠ.ㅠ 기우제가 필요없겠습니다^^)
아침 7시반 성판악(해발 750m)에서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어쩔 수 없이 비옷을 사 입었습니다... 행동하는데 많이 불편했습니다.
날은 이미 밝았지만 숲속은 어두컴컴했습니다. 하얀 비옷이 더욱 하얗게 보였습니다.
안개까지 짙게 끼어 어느덧 '전설의 고향' 분위기가 연출됐습니다. 옆에 가던 어느 분이 일행에게 농담삼아 말했습니다 "마치 저승 넘어가는 분위기 같다"
2~3시간을 올라가자 비닐 옷 안에 땀이 차서 너무 더웠습니다. 그래서 비옷을 벗었습니다. "아예 비 맞고 가자ㅠ.ㅠ"
산행 4시간째(11:30) 진달래밭 대피소(해발 1,500m 조금 못 미침)에 도착했습니다. 성판악부터 여기까지 7.3km를 걸어왔고, 앞으로 정상까지는 2.3km가 남았습니다^^
진달래밭 대피소에서 파는 사발면~~~ 이 높은 곳까지 직접 옮겼을텐데 끓는 물 부어주고 1,300원이면 참 착한 가격이라 생각돼 하나씩 맛있게 먹었습니다.
사발면 먹고 힘내서 다시 출발. 쉬는 사이 몸이 식어 다시 비옷을 입어야 했습니다.
한참을 더 올라가니 비가 그치고 우리는 농무 속에 들어와 있었습니다.
우리는 그 속에 있어서 잘 몰랐지만 바깥에서 보면 여기가 아마도 구름 속인가 봅니다.
농무 속을 더 걸어올라가니 저 위쪽에 밝은 햇살과 파란 하늘이 나타났습니다. 늘상 접하는 햇살과 하늘이건만 이곳에서는 어찌나 밝고 파랗던지...
힘들어하던 아들도 다시 힘을 내기 시작했습니다^^
마침내 구름을 뚫고 나왔습니다. 구름 위 세상은 구름 아래 세상과 너무도 달랐습니다.
세상을 덮은 운해를 바라보며 한 컷을 찍었습니다.
경치가 아무리 아름다워도 그래도 더욱 아름다운 것은 사람입니다.
YTN 동료들과 함께 공정방송을 위해 싸우고 있는 매 순간. 제게 가장 힘이 되고 소중한 사람들입니다.
아랫세상에서 갈갈이 찢긴 마음을 이곳에서 추스립니다. 그리고 이 높은 곳에서 다시 우뚝 서 봅니다.
산행 5시간 30분째(13:00). 한라산 정상(해발 1,950m)에 도착했습니다.
정상에 서면 올라오는 동안의 힘듦을 망각하는 것이 인지상정인가 봅니다.
접근이 금지된 저 아래에 백록담이 성스럽게 놓여 있습니다.
아내가 먼저 '공정방송' 사진을 찍자고 보챕니다. 아마 제가 먼저 말을 꺼내기 쑥쓰러울 거라 생각했나 봅니다. 남편 잘못 만나 마음고생을 하고 있는 아내에게 미안했고, 또 그 아내가 활짝 웃어줘서 너무너무 고마웠습니다*^^*
처음엔 많은 사람들 사이에 쑥쓰럼을 타던 아들도 곧 얼굴 가득 웃음꽃을 피웠습니다. 아빠의 미안함을 덜어주기 위해 애써 웃은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언론악법 폐기하라"
사사오입 이후 대한민국 국회의 최대 수치인 7월22일을 잊을 수 없을 겁니다.
한라산 정상 부근의 어느 바위... 지난 1년간 수없이 부른 '바위처럼'이 생각납니다. "우리 모두 절망에 굴하지 않고 시련 속에 자신을 깨우쳐가며..."
내려갈 때 예쁜 꽃들이 눈에 들어옵니다. 올라올 때는 그 존재조차 느끼지 못했는데 이제 여유가 생겼나 봅니다.
꽃잎마다 풀잎마다 맺히는 빗방울을 보며 생각을 고쳐봅니다. 한라산 구름 아래 내리는 빗줄기를 왜 시련이라고만 생각했을까? 메마른 대지를 적셔주는 단비라고는 왜 생각하지 못했을까?
동료들과 함께 '공정방송'이란 가치만 쳐다보며 고락을 함께 해 온 지난 1년여 시간. 그 시간을 결코 후회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얼굴을 때리는 빗줄기도 이젠 시련이 아니라 단비로 생각하면서 좀 더 여유를 갖고, 마음의 메마름을 적셔가면서 싸워가야겠습니다.
글 / 사진 : YTN 조승호 조합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