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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진] 259일간의 투쟁후기

마니아 편집팀 | 2010.09.02 | 조회 15172

259일간의 투쟁후기

미국의 헤비급 권투선수 조 프레이저



지난 259일이 저에게 어떤 의미였냐고 묻는다면, 뜬금없어 보일지 모르지만 저는 이 권투선수의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권투 역사상 세기의 명승부들이 있는데, 그중 하나가 복싱 챔피언 자리를 놓고 이 조 프레이저와 무하마드 알리가 벌인 혈투라고 합니다. 특히 1975년, 40도를 웃도는 필리핀 마닐라에서 14라운드까지 두 선수가 죽기 살기로 싸웠던 3차전은 많은 이들이 손꼽는 명승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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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하마드 알리보다 키도 훨씬 작고 리치도 짧았던 조 프레이저는 알리에게 타격을 주기 위해서는 무수한 펀치를 맞더라도 몸 가까이 파고드는 인파이터가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알리의 펀치를 수만 번 허리를 굽혀가며 끊임없이 피하고, 또 수없이 맞으면서 파고들던 프레이저는 처음으로 알리를 다운시킨 선수가 됩니다. 그러나 한 눈이 백내장으로 이미 실명상태였던 그는 너무 많은 펀치를 맞아서 나중에는 장님이나 다름없는 상태로 경기를 하지요. 끈질기게 버티고 버티다가 결국은 생명까지도 위험하다는 우려 때문에 조 프레이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코치가 경기를 중단시켜 14라운드의 혈투 끝에 기권 패 했습니다. 


챔피언 벨트는 알리가 가져갔지만, 사람들은 이 경기에서 조 프레이저가 보여준 불굴의 의지를 더 오래 기억했습니다. 1라운드, 2라운드, 3라운드… 14라운드까지, 너무 많이 맞아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도 끝없이 허리를 숙이고 일어나기를 반복하며 알리의 턱밑을 파고들던, 오뚝이처럼 때려눕혀도 눕혀도 일어나던 그 모습. 경기 내내 조 프레이저는 놀라운 정신력으로 단 한 차례도 다운당하지 않았습니다.  ‘고릴라’라며 늘 조 프레이저를 조롱했던 알리도 나중에는 ‘위대한 선수’라며 경의를 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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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졌습니다. 네, 우리는 패배했습니다.


YTN 노조가 낙하산 사장을 몰아내겠다고 지난 259일 동안 매일같이 외치지 않았냐고 묻는다면, 그런 면에서 너희는 패배한 게 아니냐고 묻는다면 그렇다고 대답하겠습니다.


돌을 던진다면 저는 남 탓 하지 않고 맞겠습니다. 언론인의 책무를 다하지 못했고 이 투쟁에서 결과물을 보여주지 못했다고 비난한다면 듣겠습니다. 최선을 다했지만 동료 여럿을 인질로 잡힌 저희는 낙하산도 몰아내지 못했고 동료도 아직 다 구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조 프레이저가 매 라운드 승패를 뛰어넘는 무언가를 보여주었듯이, 저에게 지난 259일은 매 순간이 맞아도 맞아도 다시 일어나서 권력의 유리 턱을 노리는 과정이었고, 그 자체가 너무나 소중했습니다. 반드시 이길 수 있다고는 믿지 않았다는 점 고백하겠습니다. 그러나 처음부터 체급도 다른데 어떻게 싸우냐며 수건부터 던지는 겁쟁이가 되지 않으려 애썼고, 편파 판정하는 심판에게 모든 탓을 돌리고 싶지도 않았습니다. 그야말로 후회 없이 박 터지게 싸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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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잠시 그로기 상태로 링 위에 뻗어있지만, 텐 카운트 나오기 전에 일어날 수 있는데, 나는 더 싸울 수 있다고 했는데, 코치가 수건을 던집니다. 그렇게, 이제 개개인의 싸움이 되면 더 힘들다는 걸 알면서도 우리는 결국 양보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우리는 노종면 선배만이라도 우선 구해야만 했습니다. 혹자는 이렇게 말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위원장이 구속되어서 개인으로서는 힘든 일일지 모르지만 어차피 각오했던 사람이고 오히려 전략적으로는 상대방을 공격하기에 더욱 좋은 구실이 생겼던 거 아니냐’고. ‘기왕 이렇게 된 거 끝까지 더 버텨보지 그랬냐’고요.


그런데 저희는 그렇게 할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중에 그 누구도 킹을 잡기 위해 버려도 좋을 체스판의 말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는 협상 테이블의 카드가 아니라 사람이고 동료고 선배이고 후배이고 누군가의 아빠이고 엄마이고 자식이고 남편이고 아내이기 때문입니다. 잠시 후퇴해야 하더라도 이 싸움에서 낙오자가 생겨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코치가 말합니다. 지금 당장 링 위에서 죽을 필요는 없잖아. 다같이 살아서 또 다음 번 타이틀매치를 준비하자… 그렇게 해직자 징계자들을 위한 또 다음 경기가 우리에게는 남아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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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이 싸움은 ‘시즌 원’을 마무리하고 YTN에 다니는 모든 사람들 개개인이 얼마나 공정한 뉴스를 만들 수 있는지의 ‘시즌 투’가 시작된 것 같습니다. 예전 글에서도 제가 밝혔지만, 어차피 이 투쟁은 언론사에 다니는 방송쟁이들의 직업정신의 문제였고 앞으로도 그럴 겁니다. 어떤 사람이 사장으로 오건, 어떤 세력이 정권을 잡던 언제나 권력은 언론을 탐할 테고, 때로는 언론도 권력을 탐할 테니 이 싸움은 언론사에 발을 담그고 있는 한 영원히 우리가 지켜야 할 딸깍발이로서의 자존심 문제입니다. 이 자존심을 버리고 그냥 샐러리맨이 되지 않는 한 사장실 앞에서 피켓팅을 하건 안하건 우리는 영원히 대통령의 특보 출신 인사는 언론사 사장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공정해야 할 보도에 손을 대는 자가 있어서는 안 된다고 외칠 것입니다. 우리가 진정 싸워야 할 상대는 구씨가 아니라 그가 상징하는 권력의 입김일겁니다. 우리가 방어해야 존재는 YTN 사장실 의자가 아니라 공익과 민주주의의 감시자로서의 역할일 겁니다.

어떤 사람들은 YTN을 사랑하자며 애사심을 말할 때, YTN의 시청률이나 매출을 사랑하자는 말을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혹은 자기의 YTN에서의 자리를 사랑한다는 고백을 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지난 259일 동안 단순히 이런 것들이 아니라 YTN이 걸어온 길과 함께 일하며 땀 흘리고 달려온 YTN 사람들을 사랑한다는 것을 절실히 깨달았습니다. 그러기에 상처가 더 깊은지도 모르겠지만, 흉터는 남을지언정 언젠가는 그 자리도 아물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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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경기에서는 우리는 졌습니다. 그렇지만 YTN 사람들은 쉽게 무릎 꿇는 비굴한 사람들이 아니라는 걸 보여주고자 노력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이걸 잊는 나이가 되어 더 편한 길을 걸으려고 할 때도 우리의 후배들이 우리의 모습을 기억하고 다시 일깨워 줄거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 싹이 더 무럭무럭 자랄 때면 분명 우리도 상대를 KO시키고 승리 할 때가 올 겁니다.


‘나는 쓰러질지언정 결코 지지 않는다.’ 라는 무하마드 알리의 말처럼,


‘우리는 쓰러질지언정 결코 지지 않았습니다.’

 

글 작성 : YTN 김수진 조합원 (보도국 뉴스팀)



Santana [Victory is Won]




BBC 다큐멘터리 '더 파이터' (알리와 프레이저의 경기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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