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메뉴팝업닫기

포토 에세이

YTN마니아는 항상 여러분과 함께합니다.

서울에서 제주까지, 어게인 3월 2일

마니아 편집팀 | 2010.06.18 | 조회 12324

IMG01.jpg

  모였다. 구름처럼 모였다. 전국각지, 서울에서 제주까지, 한 올 실은 구름같이 모여 깃발을 만들었다. 그리고 흔들었다. 너와 내가 없었고, 지국과 지국이 없었다. 같은 깃발 아래, 같은 구호와 배지를 가지고, 우리는 상식을 위해 깃발이 되어 스스로를 흔들었다.

  춘 삼월이 시작됐다. 지난 2일, YTN 로비에는 대형 현수막이 내걸렸다. ‘언론장악 MB악법, 총파업으로 분쇄하자’ 천장에 매달린 대형 현수막은, 아스라한 봄 햇살을 말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회전문 틈으로 들어오는 오전 바람은, 무뚝뚝한 현수막 귓전을 매만지고 있었다. 여북 한기 남은 초봄 바람은, 집회 준비에 여념 없는 조합원 이마 땀을 닦아내고 있었다.

  시각을 알리는 분침이 움직였다. 조합원 삼삼오오가 로비에 집결했다. 행여 참여가 저조하지 않을까, 집행부 속은 전전긍긍 조여만 갔다. 주광 틈으로 솟아난 로비의 먼지가, 마치 눈처럼 사방에 흩날렸다. 선두에 자리 잡은 조합원 심경은, 치열한 전투의 여느 평화로운 찰나에 서 있는 것처럼, 가본 적 없는 고요한 시가와 진지를 찾듯, 다소 상기된 표정으로 정면을 주시하고 있었다.


  전장 속 어색한 행군의 발걸음은, 지난 230여일의 YTN을 이끌어갔다. 누구도 거머쥐지 않으려던 깃대의 선봉장. 어느 샌가 깃봉을 붙잡고 하늘을 올려다보니, 깃발은 없어 우리 스스로가 깃발이 되어야 했다. 그것은 개국 15년 차 막내에게 주어진 짐 치고는, 다소 무겁고 어색했던 지라, 반목과 갈등 등이, 거머쥔 손아귀 어딘가를 맴돌기도 했었다.

IMG_110102.jpg

  짧지 않던 지난날의 투쟁, 그 발걸음은 한 발짝 걸으면 두 발짝 후퇴하듯 했다. 그럼에도 발걸음은, 언제나 전장의 선두에 서 있었다. 그것은 때로 자부심을, 때로는 두려움을 주기도 했었다. 두드리면 열릴 것 같던 종탑의 철문을 향해, 언제는 다만 쉬었다 가자는 내부의 초록을 엄하게 다그치게도 만들었었다.

  반목은 상흔을 남겼다. 세월 지나면 모든 것은 사라진다지만, 어떤 것은 유아기 주삿바늘의 상처처럼 일생을 통해 자국을 남기기도 한다. 내부 감정은 숨길 수 없고, 드러난 대립은 서로의 이마에 표식을 내기도 했다. 감정의 다툼은 여북하게도 계속 됐고, 소금보다 중한 공정방송의 가치는, 하여 꾀 내는 당나귀의 심경으로 냇물 위에 드러눕게도 만들었다.

IMG_112302.jpg

  하지만 지켜야만 하는 본연의 가치는, 어떤 갈등과 걸음걸이도 무색하게 해주었다. 그것은 존재 자체로 소중한 것이었고, 또 현세에 드러난 산발적 허영의 광기를 분쇄시켜 주는 에너지기도 했었다. 가치가 지당히 명분 있는 것이라면, YTN 노조는 충실히 그 가치를 지켜 내기 위해 다짐을 할 수 있어야 했고, 지켜야만 한다는 선언을 하기도 했었다. 또 무거운 발걸음 부근은 태양 같은 촛불 시민이 주변을 밝히고 있었으며, 언론 동지들은, 연대로서의 응원에 격려해 주기도 했었다. 명분과 가치 그리고 응원 등의 모든 것은, 역사적 3월 2일의 현장에, 무수한 조합원을 집결시켜준 근원, 그 자체였던 것이다.

IMG_0686.jpg


  시각을 알리는 분침이 빨라졌다. 후열 조합원들이 방석을 잡고 자리에 앉았다. 배포한 유인물을 읽거나, 근방 사우들에게 안부 등을 묻기도 한다. YTN 노조는 조합원 수가 많지 않아, 조합원 일부가 빠지면, 그 파장이 다른 사업장의 몇 배가 되는 형국이다. 그런 사정을 아는 하에서의 제작거부투쟁은, 어떤 의미로 목숨을 버리는 행위와도 같다. 그러나 조합원들은 알고 있었다. 때론 소중한 것을 지키기 위해서, 자신의 가장 소중한 것을 놓아야만 한다는 것을, 더불어 ‘방송을 끊어야만 방송을 지킬 수 있다’는 역설적 상황도 말이다. 하지만 지난 15년 간, 단 한 번도 방송을 놓아보지 않았던 조합원들에게 있어, 목숨과도 같은 방송을 끊어야만 한다는 것은 과연 쉬운 일이었을까?


  시각은 10시를 알렸다. 집회가 시작됐다. 전 후열 사우들의 표정이 비장했다. 고개 돌려 결의를 다짐하는 조합원들의 눈빛이 오갔다. 좁은 로비는, 각양 취재진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집행부의 우려는 기우였다. 단상 정문에서 시작 된 새까만 물결은 로비 중간까지 계속 됐고, 마침내 후문 앞까지 입추의 여지없이 빼곡하게 들어차 있었던 것이다. 동일한 배지와 동일한 유니폼 아래, MB악법 저지와 공정방송 사수 등을 외치는 지천의 인원에, 조합원 모두는 감격의 흥분을 느끼고 있었다.

IMG_2976.jpg

  그것은 장관이었다. 개국 이래 이토록 집중적인 모임도 없었고, 결의 찬 ‘한 목소리’도 없었기 때문이다. 이 날은, 비장한 구호 등이 성토 됐으며, 명분 찬 성명서도 낭독 됐다. 또 기쁨으로 춤을 췄고, 뜨거운 투쟁의 노래도 연달아 불렀다. 제주에서 달려온 한라산의 목소리, 강릉 설악의 메아리와 빛고을 광주의 내음새. 누구랄 것도 없이 YTN은 하나였다. 투쟁을 위해 또 투쟁에 대해, 무엇보다 상식을 지키기 위한 상식 있는 조합원들은, 같은 깃발 아래 그 스스로가 하나로 나부끼고 있었던 것이다.


  해직 정직자들을 부르는 구호가 로비에 울렸다. 한 명 한 명. 삼백 조합원들이 부르는 거대한 함성은, 목구성 깊숙이 부터 뜨거운 것을 밀어냈다. 그것은 콧등을 지나 눈물을 자극해, 조합원들의 가슴을 애타게 만들었다. 우리는 무엇을 위해 그들을 잃었고, 또 무엇을 위해 230여일을 달려왔던 것일까? 한줌 주구가 목을 친 우리의 동지는, 필연코 우리가 살려내고야 말겠다는 결연한 다짐이, 양손 깃봉 아래 가득 찼다. 그리고 그것은, 또 다른 YTN 노조의 다짐을 만들어냈다.


  YTN의 깃발은 지금도 뜨겁다.


- YTN 서정호 조합원 (언론노보 기고문)
 

본 웹사이트의 게제된 모든 이메일 주소의 무단수집을 거부하며, 자세한 내용은 하단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본 웹사이트에 게시된 이메일 주소가 전자우편 수집 프로그램이나 그밖의 기술적 장치를 이용하여 무단 수집되는 것을 거부하며, 이를 위반시 정보통신망법에 의해 형사처벌됨을 유념하시기 바랍니다.
이메일을 기술적 장치를 이용하여 무단으로 수집, 판매, 유통하거나 이를 이용한자는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등에 관한 법률 제 50조의 2규정에 의하여 1천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집니다.

01. 누구든지 전자우편주소의 수집을 거부하는 의사가 명시된 인터넷 홈페이지에서 자동으로 전자우편주소를 수집하는 프로그램, 그 밖의 기술적 장치를 이용하여 전자우편주소를 수집하여서는 아니된다.
02. 누구든지 제1항의 규정을 위반하여 수집된 전자우편주소를 판매·유통 하여서는 아니된다.
03. 누구든지 제1항 및 제2항의 규정에 의하여 수집/판매 및 유동이 금지된 전자우편주소임을 알고 이를 정보전송에 이용하여서는 아니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