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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발 제작자 수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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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를 당해본 적이 있는가?

돌발영상 | 2009.04.05 | 조회 7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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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과 나

취재를 당해본 적이 있는가?
                                                                                  임장혁 YTN 돌발영상 PD | yimmm@ytn.co.kr
                                                                                                                            (시민과언론 83호)

기자 생활만 14년

나는 기사를 쓰고 방송을 해왔다. 14년 동안 경찰서를 돌아다니고 집회나 시위 현장을 찾아다니고, 검찰청사와 법원을 드나들고 정부부처 곳곳을 누비고 국회의원들과 고위 공무원들을 만났다. 수많은 사건 사고들을 취재하고 수많은 사람들을 인터뷰하고 수많은 사연들을 취재하고 수많은 주장과 목소리들을 기록해 왔다.

이렇게 해서 ‘기사’라는 걸 만들어 세상 한 구석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세상에 알렸다. 얼마 전까지는 ‘돌발영상’이라는 프로그램을 만들어 역시 세상 한 구석의 부조리한 일들을 세상에 알려왔다.

그러나 14년 동안 이렇게 계속되던, ‘세상 한 구석의 일을 세상에 알리는 일’ 은 나에겐 그저 ‘일상(日常)’이었다. 생계 때문에 무덤덤하게 날마다 반복해 온, 말 그대로 일상에 불과했던 듯하다.

14년이 지난 요즘, 나는 이제 거꾸로 취재를 당하는 상황이 됐다. 대선특보 출신 구본홍 씨가 뉴스만 하는 보도전문채널, YTN의 사장이 되려는 것을 반대하고, 그것 때문에 해고 당하고 정직을 당하면서부터 나와 내 선후배들은 수많은 다른 언론사 기자들의 인터뷰 요청에 응하고 사진에 찍히고 동영상 카메라에 잡힌다.

거꾸로 취재당하는 기자

세상 한 구석의 일을 세상에 알리던 YTN이 지금은 반대로 세상의 한 구석이 되어 다른 언론들에 의해 세상에 알려져야만 하는 입장이 되었다. 바꿔 말하면 다른 언론사 기자들의 ‘일상’에 필요한 하나의 취재 대상이 된 것이다.

다른 기자들의 ‘일상’에 의지해 우리 일이 세상에 제대로 알려지길 바라는 ‘세상 한 구석’의 입장으로 몇 달을 지내면서 ‘우리 일을 세상에 알리는’ 다른 기자들에게 이런저런 불만도 품게 됐다.

‘왜 우리의 절박한 상황을 단 몇 줄의 무미건조한 글로 축약하는가?’, ‘왜 우리의 억울한 사연을 보다 자세히 소개해 주질 않는 것인가?’, ‘왜 우리의 당연하고 정당한 주장을 양비론적 시각으로만 전달하는가?’, ‘왜 구본홍 씨가 자행하는 나쁜 짓을 파헤쳐 집중 보도하지 않는가?’

제한된 기사 지면이나 방송 분량, 기자로서의 객관적 가치판단 등의 이유로 그럴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조금이라도 더 세상에 알려지고픈 ‘세상 한 구석’의 입장에서는 불만이 가시지 않았다.

절박하고 억울했을 ‘세상 한 구석의 사람들’

그러나 이런 불만들은 곧바로 ‘14년간 세상 한 구석의 일을 세상에 알려왔다고 자처해 온’ 나에게로 이어졌다.
 
‘나는 누군가의 절박한 상황을 무미건조한 짧은 몇 줄로 축약한 적이 없던가?’, ‘나는 누군가의 억울한 사연을 더 깊이 이해하고 더 자세히 소개하려 노력했던가?’, ‘나는 누군가의 당연하고 정당한 주장에 대해 양비론이 아닌 진실된 목소리로 전달하려 애썼던가?’

다시 말하지만, 그저 ‘일상’일 뿐이었다. ‘취재’라는 거창한 이름의 행위로 ‘일상’을 포장했지만, 아마도 나에게 취재를 당했던, 절박하고 억울하고 고통받던 수많은 ‘세상 한 구석의 사람들’은 나의 일상적인 취재와 일상적인 보도에 크게 불만을 품고 때로는 분노도 했으리라.

대선특보 사장을 막다 정직을 당해 그 ‘일상’마저 행할 수 없게 된 지금에서야, 나의 ‘일상’에 불만을 품고 분노도 했을 사람들의 바로 그 입장에 놓이고 난 지금에서야, 제대로 알려지지 못하는 ‘세상 한 구석’의 절박함과 억울함과 고통의 깊이를 뒤늦게 깨닫게 된 부끄러움이 앞선다.

나라면 그렇게 안 산다

‘입장 바꿔 생각해보라’는 단순하지만 유용한 해법. 뒤늦게나마 경험하게 된 ‘역지사지’의 교훈을 통해, ‘앞으로라도 세상 한 구석의 고통을 세상에 알리는 일을 그저 일상으로 접근하지 않겠다’는 굳은 다짐으로 그 부끄러움을 조금이라도 만회해볼까?

역지사지.

말 나온 김에 좀 다른 역지사지를 해보며 글을 마치겠다.

오랜 세월 기자 생활을 하다가 대통령 선거를 맞닥뜨려 가장 유력한 후보 밑에 들어가 선거운동을 한 뒤, 그 공을 내세워 보도전문채널 사장을 시켜달라며 나섰다가, 공정방송을 침해말라는 YTN 구성원들과 국민, 언론단체들의 반발에 부딪치자 무자비하게 기자들을 해고해 당사자와 가족들의 피눈물을 짜낸 뒤, 다시 ‘나를 사장으로 안 받아주면 월급 안 주겠다’며 신성한 노동의 대가를 불법으로 체불하고 있는 구본홍씨의 입장에 서봤다.

나라면 그렇게 안 산다. 나라면 즉각 사퇴하겠다.


- 2008년 9월 10일
(이 글은 지난해 9월 시민과 언론에 기고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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