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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발 제작자 수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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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임 1주년...대통령에게 보내는 편지

돌발영상 | 2009.04.05 | 조회 7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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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서운 일마다 님이 떠오르지 않기를"


 

“이 정권은 생각보다 무섭습니다. 우리 노조의 목소리는 옳은 것이지만 이 정권은 절대로 구본홍을 물리지 않을 것입니다. 오히려 우리만 큰 화를 당합니다. 이 정권, 무서운 정권입니다.”  
 
대선특보 출신인 구본홍씨가 24시간 뉴스만 하는 YTN 사장으로 오려던 시점에, 사장 반대 투쟁에 뛰어든 제게 평소 친하게 지내던 한 후배가 한 말입니다. 과거 정치부에 있으면서 지금의 여권 인사들을 깊숙이 취재했던 후배입니다.
 
저는 이렇게 답했습니다.
 
“정권이 아무리 무서워도 옛날처럼이야 하겠느냐… 민주주의가 만개한 21세기 대명천지에 옳지 않은 일을 정권이 힘으로 밀어붙이기야 하겠느냐…”
 
대통령님과 악수 나눴던 기억

상식이 통하는 시대라는 믿음도 있었지만 대통령과 만났을 때의 기억 때문이기도 합니다.
 
재작년 10월, 대선전이 한창일 쯤 이던가요, TV토론 참석차 YTN을 방문하셨을 때 돌발영상 제작실에 잠시 들르셨지요. 저를 보고 환하게 웃으셨습니다.
 
“돌발영상 잘 보고 있다. 열심히 해 달라”는 말씀과 함께 굳은 악수도 해주셨습니다.
 
수많은 사람과 악수를 나누시는 대통령께서는 기억도 가물가물하시겠지만 저는 당시 가장 유력한 대통령 후보의 손을 잡아봤다는 사실에 내심 우쭐해지기도 했습니다. 집사람에게 한참 자랑을 늘어놨습니다. 다소 긴장은 됐어도 ‘무서움’과는 거리가 먼 모습이셨습니다. 
 
그래서 ‘이 정권은 무섭다’라는 후배의 말은 더욱 실감이 나지 않았습니다.
 
그 후배의 말을 들은 지 6개월이 지났습니다. 그 사이 저는 정직 6개월 조치를 당했습니다. 제 밑에서 일하던 제 후배는 다른 선후배 5명과 함께 아예 해고됐습니다. 군사정권 시절 이후 처음이라고들 했습니다. 열심히 하라고 격려해주셨지만 저희가 만들던 돌발영상도 그래서 넉 달 넘게 제작, 방송이 중단된 상태입니다. YTN 노조가 사장을 계속 반대하면 YTN을 문 닫게 할 수도 있다는 고위공직자의 협박으로 힘겨워하기도 했습니다.
 
나와 주변에서 일어나는 무서운 일들

저에게는 정말 무서운 일들이 일어난 것입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제 머리 속 한편에는 대통령의 얼굴이 스쳐 지나갔습니다. 대통령과는 직접 관련이 없는 것인데도 말입니다.
 
무서운 일은 다른 곳에서도 일어났습니다.
 
촛불 시위에 참여해 경적을 울린 트럭 운전사는 운전면허 취소를 당했고, 유모차를 끌고 나왔던 주부에게는 경찰 소환장이 날아들었습니다. 이 무렵 제가 이용했던 어느 택시의 운전기사는 무서운 세상이라고 했습니다. 그러곤 대통령과는 직접 관련된 일이 아닌데도 이 택시 기사는 대통령의 이름을 거론했습니다.
 
저자들의 강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역사 교과서가 반강제적으로 고쳐지고, 국방부에서는 다 잊고 지냈던 불온서적이라는 말이 재등장하고, 임기가 한참 남은 공공기관장들이 한 순간에 자리에서 쫓겨나고, 반면 문제가 많이 드러난 고위공직자들은 거센 사퇴 여론 속에서도 굳건히 자리를 유지했습니다. 어느 모임에 참석했었는데 다들 무서운 정권이라고 입을 모았습니다. 그러곤 대통령과는 직접 관련이 없는데도 다들 대통령의 모습을 떠올리더군요.
 
여론의 편중을 야기할 것이 분명한 방송관련법들이나 시민사회의 건전한 의사표시까지 제한할 수 있는 이런저런 시위 관련법들이 국회에서 속도전을 펼치고 있습니다. 인터넷을 이용하다가 무서운 정부, 무서운 여당이라고 규정한 한 네티즌의 글을 봤습니다. 역시 대통령과는 직접 관련이 없을 수 있는데도 대통령의 약칭을 함께 나열해 놨습니다.    
 
무서운 일마다 등장하는 대통령님의 이름

미네르바가 구속됐을 때, 일제고사에 거부감을 표했다는 이유로 많은 교사들이 해임·파면됐을 때, 낙하산 사장에 반대했다는 이유로 KBS 기자와 PD들이 중징계를 당했을 때도 수많은 사설과 칼럼들이 무서운 권력이라면서 역시 대통령과 직접 관련이 없는 일인데도 대통령을 비판했습니다.
 
용산 철거현장에서 고귀한 생명들이 불에 탔을 때, 사람들은 정말 무섭다고들 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대통령과는 직접 관련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여지없이 대통령을 들먹였습니다.
 
사회 구석구석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일일이 대통령과 연계시키는 것은 온당치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모든 일을 나라님 탓으로 돌리는 것이 민초들입니다. 대한민국 국민 역시 공권력에 의한 무서운 일들의 뒤에 대통령의 얼굴을 떠올리게 마련인 것입니다. 대통령께서는 억울하시겠지만 그만큼 ‘세세한’ 일에도 따뜻한 관심과 배려가 전해지도록 힘써 달라는 뜻이겠죠. 국민이 대통령을 무서워하는 일이 없도록 말입니다.
 
국민이 정부를, 여당을, 대통령을 무서워하는 일은 결코 있어선 안 되는 일 아니겠습니까?
 
무서운 정권에서 기자가 사는 법…저항

‘이 정권은 무서운 정권’이라던 제 후배의 말에 당시 저는 이렇게도 덧붙였습니다.
 
“그럴 리는 없겠지만 만일 과거 군사정권과 비슷한 방식으로 무섭게 나온다면 그것은 당연히 기자로서 저항해야 할 문제이지 않겠느냐… 아니, 그러기 이전에 이 시대의 밝음과 화창함이 그 무서움을 어찌 해주지 않겠느냐….”
 
지금 저는 저의 이 말이 세상 물정 모르는 치기 어린 소리로 남게 될 것 같아서 무섭습니다.
 
특히나 요즘 OBS의 동료 기자들이 저희와 똑같은 문제로 사장 반대 투쟁에 나서는 모습을 보면서 그 무서움은 현실로 다가오는 듯합니다.
 
그러나 저는 과거를 답습하는 일부 관료들과 따뜻함이 결여된 무심한 행정이 무서울 뿐, 대통령만큼은 무서운 분이 아니라고 믿습니다. 경제난 때문에 아직 ‘세세한 일들’에 따뜻한 관심과 배려를 전하시지 못할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만일 이 편지를 읽으시고 화를 내신다면 저도 대통령을 무서워 할지 모르겠습니다.
 
무엇보다 대통령께서 이 편지를 아예 읽어보지도 못하실 것 같다는 생각이 더 무섭게 느껴집니다. ‘소통 하겠다’는 대통령의 말씀을 믿어볼 뿐입니다.
 

   

몸 건강히 안녕히 계십시오.

2009년 2월25일

YTN 돌발영상팀장 임장혁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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