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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발 영상 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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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너리티 리포트]

마니아 편집팀 | 2009.03.21 | 조회 9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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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마이너리티리포트를 재밌게 본 기억이 있다. 여느 '블록버스터'를 볼 때처럼 진짜같은 그래픽 효과를 실컷 즐기면서 메시지나 스토리보다는 시각적 흥미에 빠졌었다.

  마이너리티리포트의 현란한 액션에만 흠뻑 취했지만 이후 딱 한 장면의 상황과 대사가 머리 속에 남았다.

  주인공 톰 크루즈가 긴 유리판 위로 공을 굴린다. 반대편 사람이 바닥으로 떨어지려는 공을 잡는다.
주인공이 묻는다.

  "왜 공을 잡았죠?" 

  대답은 당연하다.

 "떨어질테니까..."

  돌아온 주인공의 말이 매우 뜻밖이다.

 "안 떨어졌잖아요. 당신이 잡아서...!"

  억지스러우면서도 심오한 철학이 담긴 듯 하다.

  이어지는 말은 이랬다.

 "The fact that you prevented it from happening doesn't change the fact that it was going to happen."

  짧은 영어실력 관계로 정확한 취지를 번역하긴 힘들지만 굳이 해석하자면,

  "발생하려는 사건을 당신이 방지했다는 사실은 발생하려던 일에 영향을 주진 못한다......?"

  한국 말이 더 어렵다.

  영화 대사로는 다음의 번역이 더 어울림직하다.

  "발생하려던 일을 막았다고 생각하겠지만 그 일을 막은 자체가 발생하려던 일이었어요."

 '공이 떨어지는 일'이 발생하려던 일이 아니라 '떨어지려는 공을 안 떨어지게 잡은 일' 자체가 바로 발생하려던 일이었다는 의미일 게다.

  영화 마이너리티리포트의 이 부분은 이후 술자리에서 잘난 체 할 때 쓰기 위한 내 사소한 잡담거리 중 하나로 내 머리 속에 입력됐다.  
 
  새정부가 막 들어선 2008년 3월, 이동관 청와대 대변인의 공식 브리핑을 화면으로 보고 들으면서 톰 크루즈의 대사가 순간적으로 떠올랐다. 꼭 들어맞는 상황은 아닌 것 같으면서도 이동관 대변인의 브리핑과 톰 크루즈의 대사는 강한 연상작용을 야기했다.

  천주교 정의사제구현단이 일부 고위공직자들의 삼성 떡값 수수 의혹을 제기하기로 돼 있던 시각이 오후 4시. 그런데 그 예정된 의혹 제기에 대한 해명 브리핑을 오후 3시에 하겠단다.

  공이 떨어질 게 뻔한 것 처럼 사제단이 누구누구를 발표할 지 뻔한 상황이기 때문일까?

  이 대변인은 기자들의 기사 작성 편의를 위해 미리 해명하겠다고 당당히 말한다.

  신문기자들의 사제단의 의혹 제기 기사에 청와대 해명이 함께 기사화되도록 하겠다는 의도가 엿보인다.

  그런데 그 해명이 좀 납득하기 어렵다.

  "조사 결과 사실무근인 것으로 파악됐다."

  아직 누가 삼성 떡값 수수 의혹 대상인지 발표도 안된 시점. 물론 청와대 정보력으로 누가 의혹 대상인지는 대충 알아볼 수도 있겠지만 떡값을 받았는지 안 받았는지를 어느 기간, 어떠한 과정을 거쳐 조사했길래 명단이 발표도 되기 전에 사실무근으로 단정해 파악할 수 있단 말인가?  더우기 사실무근인 것으로 미리 예견해 파악할 수 있다면 왜 사실무근인지 조사 과정 또한 미리 예견해서 밝힐 수 있지 않은가?

  그런데 사실무근으로 파악했다는 발표는 미리 할 수 있어도 왜 사실무근인지는 미리 발표 못하겠단다.

  철저한 사실관계 조사에 앞서 일단 아니라고 부인부터 하고 보자는 의도를 짐작케 한다.

  어쩌면 소수의견, 마이너리티리포트일 수도 있는 천주교 사제단의 이 삼성 떡값 수수 명단은 말 그대로 소수의견으로 그냥 지나갈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동관 대변인의 '미래를 내다 본' 브리핑이으로 오히려 파문이 확산된 측면도 없지 않다.

  게다가 마이너리포트와 이 대변인의 브리핑을 연상시킨 돌발영상 '마이너리포트'로 인해 출입처의 엠바고 요구를 별다른 비판의식 없이 받아들여주는 출입기자단의 관습(혹은 습관?)에도 시청자의 비판이 가해졌다.

  돌발영상의 방송 내용 역시 기존의 지상파 매체 프로그램에 비하면 아직은 '마이너리티리포트, 소수의견 '에 불과하다.  

  무조건 아니라고 부인부터 하고 보자는 권력핵심층의 습성과 무의식적으로 그런 부인을 받아들여 왔던 언론권력의 관습에 대한 소수의견의 도전이라고나 할까? 이 도전이 불쾌해서였던지 방송이 나가고 난 뒤, 청와대는 직접 YTN에 전화를 걸어 방송을 고쳐줄 것을 요구했고, 청와대 출입기자단은 YTN에 대해 출입정지 결정을 내렸다. 이러자 또 다시 청와대의 외압 논란과 출입기자단과의 밀착 논란이 불거지면서 마이너리티리포트는 잠시나마 메이저리포트의 위력을 발휘했다.

  이동관 대변인은 '곧 일어나기로 돼 있는 일'이었던 천주교 사제단의 명단 발표로 인한 의혹 확산을 막으려 했겠지만 결국 의혹 확산을 부추긴 결과인 셈이다.
 
  어쩌면 이동관 대변인이 발생하지 않게 하려 했던 '떨어지려는 공(예정돼 있던 일)'은 '사제단의 떡값 수수 명단 의혹제기'가 아니었던 듯 하다.  결국은 '이동관 대변인이 사제단의 발표에 대한 의혹 확산을 차단하려고 미리 해명을 시도했다가 되레 의혹과 논란만 더 키우게 된 사실' 자체가 이미 예정돼 있던 일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발생하려던 일을 막았다고 생각하겠지만 그 일을 막은 자체가 발생하려던 일이었어요."

- 임장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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