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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택남 취재수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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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아영] 언론이 만든 장자연의 초상

마니아 편집팀 | 2011.11.14 | 조회 16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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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이 만든 장자연의 초상


3월 7일 탤런트 고 장자연 씨가 죽고, 며칠 뒤 '장자연 문건'이라는 게 KBS를 통해 보도됐을 때, 나는 야근을 하고 있었다. 겨우 물먹은 내용을 야근 리포트로 만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그걸 계기로, 그리고 우리집이 분당경찰서와 가깝다는 이유로, 아니면 이름이 비슷하다는 이유로? 아무튼 나는 장자연 사건 담당이 되고 말았다.


얼마 전 장자연 사건을 대강 마무리하는 수사 발표가 있었다.
그날 내 동기는 나보고 "넌 똥 밟았던 거야"라고 말했다.

그 말이 맞다. 지난 3,4월 내 삶을 꽤 장악하고 있었던 이 사건은 한 마디로 똥투성이었다.

세상 모든 일이 그렇지만,

이 사건은 문건 자체부터 문건이 세상에 나오게 된 과정, 또 문건에 들어있는 내용까지 하나같이 여러 사람의 이권과 이권이 얽혀 어느 한 부분도 명확하지 않은, 아주 지저분한 사건이었다.

미니홈피에 "자연아 지켜봐줘"라며 정의의 사도 행세를 하던 매니저는, 문건이 공개되자 "나도 모르겠어요. 죽어버릴거예요!" 라며 정신을 잃었던 (이 목소리는 아직도 내 휴대전화에 녹음돼있다. 난 그때만해도 고인과 이 사람이 매니저와 배우 이상의 관계가 아니었을까 의심했을 정도였다.) 매니저는 아주 머리가 잘 돌아가고 언론플레이에 능한 고단수였던 것 같다.

쓰레기봉투를 뒤져 문건을 찾아냈다는 기자와

그런 정황을 리포트로 만들면서까지 결백(?)을 주장했던 언론사.

사실 지금도 뭐가 진실인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런 문건이 쓰레기 봉투에 버젓이 있었다는 것, 쓰레기봉투에서 문건을 찾고 회사로 돌아갔다가 다시 문건을 찾아 소속사 사무실로 왔다는 이상한 동선. 다 이해가 안된다.


일본에서 떠돌고 있는 소속사 대표나

드라마 피디 같은 사람들은 더 말할 것도 없다.


그리고 장자연.

내가 이 사건을 다루면서 가장 불편했던 점이 바로 장 씨를 바라보는 세상의 시선이었다.

악마 같은 기획사 대표에 휘둘린 힘없는 신인배우.

성욕을 주체 못하는 남성들에 의해 몸이 더럽혀진 불쌍한 여자.

권력 가진 자들에게 매일밤 원치않는 접대를 하다 결국은 죽어버린, 못다핀 여배우.

이 사건을 제일 시큰둥하게 쳐다보고있는 경찰조차도 결국 매니저에 의해 이용만 당하고 괴로워한 멍청한 여자로 장 씨를 보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고인을 단순한 피해자로 치부해버리면

이 사건을 제대로 보기 힘들어진다.


내근을 하면 이상한 전화가 정말 많이 걸려온다.

"외계에서 수신을 받아서 알았는데 이번 신종 인플루엔자의 배후에는 누구누구가 있다."

"이웃 사람들이 나를 죽이려고 하고 집에 도청 장치를 달아 나를 감시한다."

그런다고 다 취재하나? 절대 아니다.

수사도 마찬가지다.

성접대처럼 증거를 찾기 힘든 경우, 피해자의 적극성이 중요하다. 최소한 진술은 있어야 한다. 실제로 중국의 어떤 여배우는 비디오 테입까지 다 공개해서 진실을 밝힌 바 있다. 이건 성폭력 피해자가 왜 공개돼 오히려 사회적 처벌이라는 피해를 또 받아야 하냐는 논의와는 별개로, '어쩔 수 없는 수사의 이치'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장 씨는 죽어버렸다.

사람 이름만 남긴 채로.

난 이것만큼 비겁한 게 없다는 생각이 든다.

장 씨가 죽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문건에 대한 신빙성은 너무나 낮아질 수밖에 없다. 애초에 공개할 의지도, 이 사건을 언론이나 수사기관에 알려 해결할 생각도 없었던 거다. 만일 그러려고 했다면 문건이 공개될 위기에 처했을 때 죽으려 하지 않았을 거다.

소속사 문제를 해결하려고 소송을 걸기 위해 준비한 문건이었다는 경찰 발표는 그래서 납득이 된다.

강요된 성접대.

이 부분도 이상하긴 마찬가지다.

고인과 가까웠다던 어떤 제보자는 기획사 대표와 장 씨의 관계가 보도된 것처럼 상명하복식이 아니었다고 주장했다.  바닥부터 인맥을 차곡차곡 쌓아온 장 씨가 어리고 순진한 신인이 하듯 기획사 대표 손가락 하나에 왔다갔다 한다는 게 오히려 비상식적 아니냐는 거다. 어떤 제보자는 장 씨가 기획사 루트를 통하지 않고도 스폰을 받을 역량이 됐다고 말했다. 다른 브로커들을 통해서 스폰서를 수소문했다고도 했다.

이 모든 것들이 사실이 아니라고 해도.

고인이 실제로 폭압적인 기획사 대표 밑에서 여배우라는 꿈을 소중히 꾸며 노예처럼 살고 있었다고 해도,

나는 장 씨가 피해자로 여겨지지 않는다.

오히려 로비를 일삼는 연예계 구조를 인정하고 거기에 일조한 가해자로 보인다.

의상을 직접 싸가지고 다니면서 하루에 대여섯개씩 오디션을 보는 배우 지망생들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여전히 장자연이라는 이름을 건 집회가 열리고 있다.

여성단체와 일부 민주당 의원은 조선일보의 권력에 경찰이 무릎 꿇었다면서 당당히 이름을 공개하라고 주장한다.

아직도 방송에서는 '장자연 의혹' 보도물이 제작, 보도되고 있다. 대부분 경찰 수사를 비꼬고 연예계 비리를 폭로하는 내용이다.


하지만 나는 이 사건이 그저 황색 저널리즘이나 폭로 저널리즘의 재물이 된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장자연 사건'으로 떠들썩했던 지난 두달 동안 진정으로 바뀌어야 하는 건 경찰보다 언론이 아닌가 반성하고 있다.


글 : 장아영 조합원 (YTN 보도국 사회1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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