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례 13일째, 조합원과 만나는 날.
굽이굽이, 몇 개의 고개를 넘었는지 모른다.
부곡에서 밀양으로 향하는 길.
발걸음은 더위에 지쳐 무겁지만,
동료들을 만난다는 생각만으로 지친 발걸음에 힘이 생긴다.
조금만 더 걸으면, 밀양.
이제 곧 조합원들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밀양을 알리는 표지석.
하지만 원전반대 스티커가 '지금의' 밀양임을 먼저 알려준다.
저 멀리 남천교 초입에는, 서울서 달려온 21명의 조합원들이 우리를 향해 손 흔든다.
너무 기쁜 나머지 부곡에서 밀양까지의 피로가 거짓말처럼 사라지는 것 같았다.
당장이라도 달려가, 사랑하는 조합원들을 한껏 껴안고 싶은 마음.
조합원들은 '지금복직 당장복직'이라는 부채를 흔들면서 남천교 위를 걷고 있다.
얼마나 기다렸던 만남이었는지 모른다.
기쁨이 얼굴 밖으로 터질 것만 같은 정유신 조합원.
사랑스럽고, 또 고마운 동료들을 맞이하며 감격의 인사를 한 명 한 명씩 나누고 있다.
우리들의 동료 최기훈 조합원.
지금은 <뉴스타파>에 속해 있지만, 마음만큼은 늘 YTN과 함께 하고 있다.
YTN 수첩을 쓰고 싶다는 말에, 노조에서 준비한 수첩과 선물을 증정하고 있다.
따사로운 햇살은 우리들의 웃음과 닮아있고, 그 열정은 태양만큼 뜨겁다.
그저 고마운 우리 동료들, 그리고 이 순간.
지금은 카르페 디엠!
순례단장 조승호 조합원이 이후의 일정을 브리핑하고 있다.
그리고,
순례단과 함께 복직 구호를 외치는 조합원들.
이제 이곳에서 한전 밀양지사까지 약 5km를 함께 걷게 된다.
우리 조합원들 외에도 언론노조 강성남 위원장과 낙하산반대 부채를 선물했던 전자신문지부 동지들, 그리고 경남도민일보지부 동지들과 동행하는 취재기자들까지, 함께 걷는 인원의 수가 대폭 늘어나 순례에 힘이 가해졌다.
아름다운 밀양의 남천강을 끼고, 밀렸던 얘기를 한소끔 나누고 있다.
인구 십만 도시 밀양.
북쪽으로는 화악산과 가지산의 지맥이 융성해 그 기백이 도시에 이르고, 남쪽으로는 낙동강과 밀양강이 흐르며 온화한 기운을 곡창지대로 펼쳐지게 하는 곳.
그런 밀양이, 이제는 송전탑의 도시가 되어가고 있다.
조합원들과 함께한 순례단은 밀양 한전지사에 도착해, <미디어피폭지> 현수막을 펼쳤다.
밀양의 송전탑 건설 논란과 관련해서는, 약 8년 전부터 지중화 등의 다른 대안이 거론되었으나, 그 동안 한전이 별다른 대책을 세우지 않고 있다가 최근 다시 건설을 추진한다고 하여 논란이 불거졌다.
지역 언론들은 그 논란에 대하여 상세히 취재하고 보도했지만, 정작 중앙 언론들은 밀양의 '송전탑 논란'에 대해서 무관심으로 외면했다.
그런 의미에서 <미디어피폭지>의 현수막은 중앙 언론들에 대한 순례단의 외침이라고 볼 수 있다.
저녁 7시.
밀양역 앞에서는 송전탑 반대집회가 예정되어 있어 순례단은 집회에 합류.
많은 어르신들이 모여계신데, 집회 이름도 <할매가 간다>라는 제목이다.
벌써 108번째 집회라고.
<할매가 간다> 집회 현장에서 깨끗한 기념사진 한 장.
그런데 가만 보니, 낯설지만 누구와 닮은 얼굴이?
바로 송태엽 조합원의 딸.
농활을 간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는데, 그곳이 밀양일 줄이야.
현장에서 우연히 마주친 아버지와 딸.
정겨우면서도 또 부러워도 보이고, 정의와 덕(arete)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정말 말과 글이 필요 없는듯.
두 눈빛이 아름답게 빛나고 있다.
집회에 운집한 인파.
밀양역 앞을 가득 채우고 있다.
'할매' 한 두 분만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금물이다.
밀양을 생각하시는 많은 '할매'들이 지역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 촛불을 들고 모이셨다.
송전탑 반대, 원전 반대 등을 외치기 위해 밀양으로 달려온 젊은이들.
그들의 모습이 세대와 세대를 잇는다.
사회자가 YTN 순례단을 소개하자 엄청난 박수가 쏟아지고, 조합원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손을 흔들어 화답한다.
이 집회는 지난 2012년, 송전탑 반대를 외치며 스스로 목숨을 끊으셨던 고 이치우 할아버지의 분신 이후, 매주 한 차례씩 밀양의 영남루 앞에서 열리고 있는 촛불집회다.
이렇게 아름다운 우리들의 어른신들은, 과연 무엇을 위해서 송전탑 건설을 반대해 오는 것일까?
돈, 아니다.
명예도 아니다.
단지 765kv라는 어마어마한 송전탑을 머리에 이고 살아가야 할 그들의 터전, 그리고 미래의 자식들을 위해서 그 건설을 반대해 오고 있는 것일 뿐이다.
발전이라는 신앙은 모든 것을 성장이라는 종교 속에 묶어 둔다.
따라서 어떤 사람은 원전을 세우거나 송전탑을 세우는 것 자체가 성장일 수 있으므로, 그것에 반대하는 외침에 대해 비난을 하거나 침묵으로 외면하기도 한다.
하지만 발전은 언제나 성장만을 가져온다는 것은 그릇된 환상이다.
사람없는 발전 없고 사람없는 성장 역시 없다.
모든 발전 그리고 성장에는 인간과 자연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한다.
그것이 결여된 발전은 기계적이고 또 폭력적이다.
우리의 세상, 그리고 우리들에 대한 이해가 있을 때, 인간은 '당위로서의' 발전이 아닌 '있는 그대로의' 발전을 이룰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미국의 한 곤충학자는, 인류의 정의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인류는 자신이 창조한 것에 의해서 정의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파괴하지 않기로 선택한 것에 의해서 정의된다."
우리는 무엇을 파괴하고 있는가?
순례 13일, 밀양은 묻고 있다.